우리는 이같은 상황에 거듭 국민적인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언제부터 북측단장이 서울 한복판에서 우리측 공인에 대해 욕설에 가까운 오만불손한 말을 해도 이를 탓하는 정부당국자 하나 볼 수 없는 세상이 됐으며, 그런데도 이 나라 적십자사총재는 무슨 죄인처럼 ‘그분’이란 최대 경칭어까지 써가며 기고드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것이 현정권이 주도하는 남북화해의 실체라면 그런 화해는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장 총재는 적십자사총재직을 그만둘 생각이 없다고 했다. 생각있는 남자라면, 자존심을 조금이라도 생각하는 공인이라면 해야 할 당연한 처신을 머뭇거리는 그의 모습에서 인간적인 연민과 함께 그만두려고 해도 그만둘 수 없는 말못할 사연을 짐작한다.
장 총재 사건을 둘러싼 일련의 전개과정을 보면 그는 시종 무대위의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북한이 처음 그의 인터뷰 내용을 문제 삼았을 때 그 자신 국회에서 “사과할 생각이 없다”고 소신을 밝혔으나 그도 모르는 사이에 사과성 밀서(밀서)가 북으로 갔다. ‘상부지시’에 따라 적십자사와 통일부 관계자들이 보낸 것이었다. 북한이 그것을 수용하지 않고 거듭 장 총재의 출현을 거부하자 그의 갑작스런 일본행이 이뤄진 것이다.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고서도 그것은 자신이 결정한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렇다면 그는 총재직에 앉을 만한 식견과 상황판단력을 못가진 사람이거나 아니면 말못하는 꼭두각시 신세이거나 둘 중의 하나다. 장씨사건에 등장하는 ‘상부’가 누구인지 우리는 알아야 하겠으며, 땅에 떨어진 국민들의 자존심을 조금이라도 보상하기 위해서도 ‘무대뒤의 연출자’는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