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천주교회가 200년 역사에서 저지른 잘못을 민족앞에 고백하고 참회하며 용서를 구하는 공식문건을 발표했다.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이름으로 발표된 ‘쇄신과 화해’라는 문건을 통해 천주교회는 구체적인 개별사건을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조상제사 금지, 병인양요, 안중근 의사 의거의 ‘살인’규정, 권위주의와 외적 성장에의 지나친 관심 등의 내용이 사실상 함축된 일련의 잘못을 포괄적으로 고백하고 용서를 구했다. 한국천주교회의 이같은 참회문건은 비록 “구체성이 결여되어 있으며 메시지가 명확하지 않고 일부 마땅히 언급해야 할 내용이 빠져있다”는 종교학계 등 일각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교회사적으로나 민족사적으로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이같은 참회는 지난 3월 교황 요한바오로 2세가 지나간 2000년 역사를 통해 가톨릭 교회가 저지른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한 ‘교황청의 역사적 과오에 대한 참회’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당시 가톨릭내 일부 논자들은 “교황청의 사과로 교회의 권위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고 반발하기도 했지만, 교황의 참회는 가톨릭의 참된 종교적 용기이며 승리라는 평가를 받았다.

같은 맥락에서 한국천주교회가 지난날 토착 전통문화와 갈등을 빚으면서 황사영(황사영)백서처럼 외세를 빌려 신앙의 자유를 얻으려 했던 사실을 액면대로 직시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또 일제에 맞서 치열하게 저항하지 못했다거나, 분단 전후기간의 천주교회의 역할상실 같은 것을 뉘우친 것도 앞으로의 교회쇄신을 위해 밑거름이 될 것이다.

특히 타종교에 대한 이해부족에 대해 사과한 것은 종교적·종파적 갈등이 더욱 첨예화하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무엇보다도 절실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북한 인권참상에 대한 한국천주교회의 침묵이 설령 남북화해의 상황적 불가피성에 부응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과연 ‘그리스도의 정의’에 부합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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