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東馥
/15대 국회의원

대북 비밀송금 문제에 관한 김대중 대통령의 최근 언행이 국헌의 문란을 초래하고 국기를 위태롭게 할 정도의 위험수위를 넘나들고 있다. 우리나라 삼권분립형 권력구조에서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하고 있는 권한은 무한하지 않다. 헌법 제66조 1항은 대통령에게 ‘국가의 독립, 영토의 보전, 국가의 계속성’과 함께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부여하고 있다.

대통령은 헌법 제69조에 의거, 취임에 즈음해 ‘헌법준수’를 ‘선서’하게 돼 있다. 요컨대 대통령도 반드시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그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 보더라도 이번 대북 비밀송금은 그 어느 한 부분도 합법적으로 이뤄진 것이 없는 명백한 범죄행위다. 이 같은 범죄행위에 대해 국가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교과서적인 공식이 있다.

사실 여부를 규명하고, 규명된 사실의 실정법 저촉 여부를 가려낸 다음 관련 법규에 입각해 처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소위 사법심리다. 사법심리는 오직 사법부의 소관사항이다. 사안별 정상참작은 그 다음의 문제다. 민주국가의 기본은 법치이고 법치는 ‘법 앞에서 만민이 평등’할 것을 요구한다. 대통령도 당연히 예외가 될 수 없으며, 사법부의 권능을 찬탈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김 대통령은 명백히 불법적인 이번 대북 비밀송금을 “사법심리의 대상으로 삼지 말라”고 주문했고 검찰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를 받아들여 ‘수사유보’라는 형식으로 사실 규명 자체를 포기했다. 김 대통령은 이 사안의 불법행위 부분에 대한 처벌은 물론, 사실규명의 길까지 봉쇄하고 있다.

이 같은 김 대통령의 행동은 당연히 삼권분립 원칙을 공공연하게 유린하는 위헌행위다. 김 대통령에게는 이 사안을 ‘사법심리의 대상에서 배제’시키는 것은 물론, ‘배제’의 ‘기준’을 정할 권리가 없다. 더구나 김 대통령 스스로 대북 비밀송금에 직접 관여했을 가능성 때문에 제척(除斥)사유의 해당자이기도 하다.

“북한이라는 반국가단체와의 접촉은 초법적으로 처리해야 한다”면서 이에 대한 “대한민국 실정법의 적용에 반대한다”는 김 대통령의 말은 그의 법률지식에 근본적 결함이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김 대통령의 말과는 반대로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는 국가보안법에도 불구하고 북한과의 교류·협력을 특례적으로 취급하는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및 ‘남북협력기금법’과 이를 뒷받침하는 수많은 ‘시행령’과 ‘규칙’ 및 ‘규정’들을 제정·공포하고 이에 근거해 ‘합법적’으로 대북 교류·협력 사업들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북한을 ‘초법적’으로 상대해야 할 아무런 실정법상의 제약이 없는 것이다.

국회는 지금이라도 김 대통령과 그를 보좌하여 문제의 대북 비밀송금 물의를 일으킨 정부 관계자들에 대해 헌법 제65조에 의거한 탄핵소추 발의를 위한 국정조사에 착수해야 한다.

임기를 불과 2주일 남짓 앞둔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조치가 필요한 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무너진 나라의 법치를 회복해 국헌과 국기를 바로잡고 왜곡된 남북관계를 바로 펼 뿐 아니라 김 대통령의 후임자들이 다시는 이 같은 불법행위를 자행하지 못하게 못을 박아둘 필요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조치에 대한 북한의 반발 때문에 남북관계가 경색된다면 그러한 남북관계의 경색은 오히려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 내친 김에 남북관계의 틀도 새로이 짜는 것이 온당하다. 잘못 끼워진 단추는 아예 처음부터 다시 끼우는 것이 옳다.

이번 대북 비밀송금 시비로 김 대통령의 ‘햇볕정책’은 이미 도덕적으로 난파선이 됐다. 노무현 차기 정권의 대북정책은 김대중 정권으로부터 난파된 유산을 상속할 것이 아니라 원점에서 새로운 출발을 모색해야 한다.

한때 노 당선자 쪽에서 미련을 보였던 북핵 해결을 위한 ‘중재역’이나 ‘민족공조와 한·미공조의 병행’은 이미 시행착오의 제물이 됐고 ‘손상된 한·미 관계의 복원(김석수 총리의 2월 5일 국회본회의 시정연설)’이 지금은 절실하다.

노 정권의 대북정책은 김대중 정권의 대북정책과의 단절과 ‘햇볕정책’으로부터의 해방이 필요하다. 이번 비밀송금 파동이 그 계기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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