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을 방문했던 노무현 당선자 특사단이 미국측 고위인사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주한미군 철수 내지는 재배치에 관한 이야기가 오갔다고 한다.

특사단 단장인 정대철 민주당 최고위원은 ‘철수 관련 언급’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하고 있지만, 미국 국방부 대변인은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한국이 원한다면 그곳에 주둔하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고 완전히 다른 설명을 내놓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런 식으로 국가 안보와 직결된 주한미군 문제가 거론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주한미군은 지난 반 세기 동안 한반도 안보의 기둥이었고, 그 현실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주한미군 문제는 이번처럼 즉흥적이고 무책임하게 논의할 성질의 사안이 아닌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방미 활동 중 크고 작은 소동을 빚은 특사단은 책임을 면키 힘들고, 노 당선자는 앞으로 대미(對美) 외교에서 이번의 실패를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주한미군의 장래와 관련한 미국측의 변화 움직임은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아직 미군철수 문제는 “한국이 원한다면…”이라는 전제를 단 일반론적 수준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특히 최근 거론되고 있는 한강 이북에 전진배치된 미군기지의 후방이동 문제는 자칫하면 북한의 오판을 부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신중해야 한다.

이는 한·미 간에 이미 합의된 ‘연합토지관리계획(LPP)’과는 사뭇 다른 차원이다. 미국측이 미군 재배치를 검토하는 것은, 휴전선 일대에 배치된 미군은 남북한 분쟁이 발발할 경우 ‘인질’ 같은 존재가 될 수 있고, 세계적으로 볼 때 분쟁지역에 미군이 전진배치된 예외적인 경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군부대의 후방 재배치가 이뤄진다면 이는 한반도 안보 지형 전체를 바꾸는 엄청난 일이다. 이 같은 변화는 최근 북핵(北核) 위기 같은 안보상황을 감안한다면 아직은 시기상조다. 국가의 생존이 걸린 안보문제까지 아무런 대책 없이 변화 무드에 휩쓸리는 것은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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