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인
/소설가

거두절미하고 노무현 당선자에게 묻고 싶다. 무엇이 벌써 노 당선자의 발목을 잡고 있는가? 그야말로 국익을 위해 우리는 이 문제부터 해결하고 가야 할 것 같다. 현대상선 2235억원에 대해 진실을 밝히지 않을 재간이 없다며 결연한 수사 의지를 말한 게 불과 며칠 전이다. 그 말이 노 당선자의 진심이었을 것이다.

새 시대를 열어 갈 대통령 당선자의 진실된 의지를 며칠 사이에 흔들어 용두사미로 만들고, 취임도 하기 전에 속된 말로 스타일 다 구기게 해서 국민들에게 냉소와 불신감을 심어 주며 당선자와 이간질시키는 요소가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도 노 당선자가 한때 말같지 않아서 입에 담지도 않겠다는 ‘통치행위’라는 바로 그 단어로 인해.

노 당선자가 현 정권에 어떤 것으로도 당당하고 투명하다면 절대로 봐주거나 거래는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식은 결코 상생의 정치니 타협의 장이니란 말로 미화될 수 없다. 그럴 리 없겠지만 작은 일이라도 과실이 많은 지난 정권과 거래한다면 그것은 말 그대로 치사한 뒷거래고 서로 얽힌 검은 사슬이며 대통령과 국가를 망치는 덫일 뿐이다.

주변의 한 두 사람도 아니고 몇 천만명의 국민들을 또다시 5년간 철저히 절망시킬 권리가 대통령에게 과연 있는 것인지?
고름은 결코 살이 되지 않는다. 몸을 썩게 하는 종기는 비단보로 덮어 숨길 게 아니라 아픔을 참고 터뜨려 짜내어 독소를 없애고, 깨끗하게 소독해야만 그곳에서 생명의 새 살이 돋아 난다. 작은 종기 하나라도 그런데 하물며 통일을 염원하는 민족의 문제에서야.

아름다운 통일을 염원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그러나 이런 식은 아니다. 민족 화합, 경협 발전, 통일까지도 대통령 한 사람의 결정, 기업 한 군데와의 밀실거래를 통해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건 북한 당국도 잘 알 것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대통령과 정권은 국민에게 겸허히 사과해야 한다. 물론 김대중 대통령과 정권의 민족애, 대북정책 내지 통일정책에 대한 열정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그간 많은 사람이 우려한 대로 방법이 좋지 않았다. 국민의 정부가 국민의 돈을, 국민에게 전혀 의논하거나 알리지 않고 썼고, 스스로 떳떳하지 못해 구차스러운 돈세탁까지 했다는 보도다.

대통령의 통치행위라는 말로 덮어 가려고 했다가 또다시 현대상선의 30년 독점 계약 대가라며, 1달러도 북에 주지 않았다는 말은 유효하다고 한다. 일개 현대상선의 일에 왜 대통령의 통치행위라는 말이 나오며, 또 왜 월권해서 사법 절차까지 왈가왈부하는가? 대통령과 현대상선은 그럼 무슨 관계인가?

임기를 며칠 남긴 연로한 대통령이다. 박지원씨는 이제 더 이상 뱉아 놓은 말을 설명하기 위해 또 다른 여러 말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무수한 말들이 행여 대통령을 더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지 않을까 염려된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이 쏟아놓은 말들이 그 말들을 금방 뒤짚고 있기 때문이다.

“…꼬치꼬치 밝힌다고 나섰다가 북한이 너죽고 나죽자고 하는 식으로 나올지 모른다…. 솔직히 김 대통령도 ‘노벨평화상’ 욕심도 있었을 테고….” 이 말은 노 당선자가 친화력을 높이 사서 자신의 비서실장으로 내정한 문희상씨가 기자와의 문답에서 한 말이라는 보도다. 유치하다. 이것이 민족 화합이고, 상생의 정치며, 국익을 위한 통치행위인가? 한 마디로 냇가의 얼음을 깨고 맑은 물로 눈을 씻고 귀를 씻고 싶다.

진정한 명예가 무엇이며 진정한 국익이 어떤 것일까? 노무현 당선자께서는 깊이 생각하고 고민해 주리라 믿는다. 그리고 새로운 전통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거부했던 국민대훈장을 5년 후 떳떳하고 당당하게 국민의 존경과 함께 받을 생각은 없는지?

5년 후 나도 열렬한 노사모 회원이 되고 싶다. ‘국민이 대통령입니다’는 권위주의적 발상에서 나온 잘못된 말이다. ‘국민이 대통령의 주인입니다’가 참된 민주주의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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