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鍾遠
/정치부 차장 jwlee@chosun.com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5일 ‘대북송금 전모 공개 반대’입장을 표명하면서 “서독도 통일과정에서 동독에 500억 달러 이상의 돈을 주었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의 말대로 서독이 동독에 돈을 준 것은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서독도 동독과 비밀거래를 했었다. 1963년부터 통일 때까지 3만3756명의 동독 정치범들을 서독으로 데려오기 위해 몰래 동독과 거래를 한 것이 거의 유일한 비밀 거래 사례이다.

그러나 서독의 비밀거래는 우리 정부의 ‘대북 뒷거래’와는 뚜렷하게 다른 점이 있다. 서독정부는 동독 내 정치범들을 인도적 차원에서 서독으로 데려오기 위해 비밀거래를 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정부는 대북송금의 목적이 개성공단 조성 경협자금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믿어줄 근거가 별로 없다. 오히려 송금과정에서의 범죄적 수법과 정상회담에 임박해 서둘러 송금한 전후 사정 등을 보면 야당의 주장처럼 ‘정상회담 성사를 위한 뇌물성’ 자금이란 의혹이 짙다.

돈을 주는 방법도 다르다. 서독정부는 초기에 데려온 정치범 8명에 대해서만 현금을 지급했고 나머지는 전부 현물로 보냈다.

서독에서 생필품을 사서 동독주민들에게 공급했고, 군사적 용도로 전용될 만한 전략물자는 하나도 보낸 것이 없다. 물론 보내준 돈은 정부예산에서 나온 것이고, 지원과정도 국민들에게만 비공개였을 뿐, 여야 정당과 법조계가 함께 참여해 투명하게 이뤄졌다.

서독은 이렇게 해서 일석삼조(一石三鳥)의 효과를 얻었다. 기본적으로 동독 내 정치범들의 인권문제를 해결하고, 정부예산으로 생필품 등을 사 보냄으로써 돈은 서독내부에 남아 경기부양에 일조하고, 동독주민들에겐 현물을 보내 줌으로써 직접 혜택이 돌아가게 한 것이다.

국책은행에서 거액을 몰래 대출받아 기업체를 중간매체로 국가기관이 동원돼 범죄적 수법으로 몰래 돈을 보낸 우리 정부의 뒷거래와는 근본이 다른 것이다.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