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對北) 비밀 송금과 관련해 “전모를 공개하면 현대가 망할 것”이라는 청와대 관계자의 발언은 그냥 묵과할 수 없는 중대한 실언이다. 남북 정상회담과 관련한 뒷거래 의혹을 덮으려고 내놓은 말치고는 너무 황당하기 이를 데 없다.

남북 경협사업에 사용했다는 자금 내역을 밝히면 왜 현대가 망한다는 것인지, 또 스스로 망할 짓을 한 기업이 자멸하는 것을 무슨 수로 막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무슨 속사정이 있기에 이토록 노골적으로 현대를 감싸고 도는지 어리둥절할 뿐이다.

그 동안 정부가 틈나는 대로 자랑해 왔던 기업개혁과 구조조정의 성과는 다 헛소리였다는 것인가. 또 그동안 원칙대로 퇴출됐던 기업들과 그로 인해 고통받았던 임직원들의 억울함에 대해 정부는 어떻게 해명할 것인가.

정부가 아무리 현대의 역성을 들어봐야 그 앞날이 밝을 것 같지도 않다. 그렇게 숨길 것이 많고, 망할 가능성이 있다고 청와대측이 공공연하게 인정한 회사와 누가 거래를 하겠는가. 멀쩡한 기업도 쓰러질 판이다.

더 큰 문제는 현대가 아니라 우리 경제와 기업들이 앞으로 치러야 할 대가(代價)다. 이번 사건으로 한국 경제와 기업의 이미지는 쉽게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었다. 개혁을 했다더니 정경유착과 분식회계, 총수의 전횡(專橫) 같은 구태(舊態)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인상을 남긴 것은 무엇보다 큰 손실이다.

한국 기업들의 투명성에 대한 불신이 확산되면 당장 외국인들의 대한(對韓) 투자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또 한국 기업의 가치가 낮게 평가되는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심화될 수도 있다.

현 정부나 새 정부가 이번 사건을 투명하게 처리하지 않고 적당히 얼버무리려 할수록 직·간접적인 경제적 피해는 더 깊고 광범위하게 확산될 수밖에 없다. 과연 무엇이 진정으로 국익(國益)을 위하는 길일지 깊이 헤아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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