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당선자 진영이 대북 비밀송금사건을 김 대통령의 해명과 사과로 마무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처사다. 김 대통령의 의중을 대변하는 입장에 있는 한화갑 민주당대표가 “퇴임하는 대통령이 이 문제를 매듭지었으면 좋겠다”고 밝히자, 노 당선자의 문희상 비서실장 내정자가 “가능만 하다면 좋은 일”이라고 호응한 데서 여권의 이런 기류를 읽을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김 대통령의 해명과 대(對)국민 사과는 이번 문제를 풀어가는 출발점이나 ‘하나의 과정’은 될지언정 결코 종착점이 될 수는 없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김 대통령의 어떤 설명도 이제 국민들에게 설득력을 갖기 어렵게 된 것이 저간의 사정이다. 이는 김 대통령 스스로 자초한 비극적 결과다.

대북 ‘뒷거래’ 의혹이 처음 제기된 이후 4개월여 동안 김 대통령이 직접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가 그토록 드셌건만 김 대통령측은 “단 1달러도 북한에 주지 않았다”는 식으로 펄쩍 뛰었다. 의혹을 폭로한 사람을 명예훼손으로 고소까지 했다. 이것이 국정 최고책임자들이 ‘양심’과 ‘명예’를 걸고 보여준 태도였다. 지금 국민들이 느끼는 절망과 분노는 인내의 한계를 넘었다고 보아야 한다.

청와대와 여권이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들어 대북 비밀송금의 불가피성과 정치적 마무리를 주장하는 것도 듣기 민망할 정도로 어불성설이다. 불법적으로 뒷돈을 주지 않거나, 또는 그 진상을 밝혀내면 남북관계가 위험해지는 것이 ‘특수성’이라면, 그 특수성이야말로 낱낱이 밝혀내 국민들에게 알려야지 덮어둘 일이 아니다.

해법은 정공법뿐이다. 모든 진실을 밝혀내고 책임질 사람은 책임져야 한다. 그것이 국기(國基)를 바로잡고, 남북관계를 정상적 궤도에 올릴 수 있는 외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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