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을 다녀온 함승희 민주당 의원은 엊그제 “미국 행정부와 의회에서 주한미군 철수문제가 심각하게 논의되고 있는데 우리 정부의 인식은 매우 안이하고 아전인수격”이라고 말했다.

여권 인사로부터는 좀처럼 듣기 힘든 함 의원의 발언은 미국 현지 분위기를 직접 체험하고 목격한 데서 나온 솔직한 위기 의식의 토로(吐露)이자 지금껏 한·미관계에 관한 안팎의 경보음을 애써 무시해온 정부와 여당에 대한 신랄한 질책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 내 반미(反美) 시위와 미국 내 반한(反韓) 분위기 등이 맞물리면서 한·미관계는 중대한 전환기를 맞고 있다. 그런데 우리 국민 대다수가 상황의 심각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여기에는 정부와 여당, 그리고 TV 방송 등을 포함한 일부 언론의 책임이 크다.

미국 내에서 진행되는 주한미군 철수론이 한반도에 가져올 파장을 감안한다면 국민들은 그 실상을 정확히 알 권리가 있다. 그것이 국익에도 부합할 뿐만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서 국민적 동의에 기초한 초당파적인 대책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북 비밀 송금 의혹사건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무조건 덮어두는 것’이 국익(國益)인 것처럼 주장하는 집권측의 태도는 결코 온당하지 않다.

그리고 노무현 당선자 특사 자격으로 현재 미국을 방문 중인 정대철 의원이 럼즈펠드 미국 국방장관과 ‘한·미동맹의 균형을 재정립(rebalance)하는 데’ 동의했다는 발표도 주목된다. 한·미관계를 상호 협력에 바탕한 수평적 관계로 재조정한다는 취지는 좋지만, 이런 변화도 한·미동맹을 한층 확대·강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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