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三熙
/논설위원

대북(對北) 뒷거래 의혹사건을 국회 내의 어떤 절차를 통해 해소하려는 움직임들이 정치권에서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설을 쇤 뒤부터 노무현(盧武鉉) 새 정부의 핵심들이 일제히 ‘국회에서의 정치적 해결’이란 해법을 들고 나온 것이다.

집권층 핵심들이 말하는 ‘정치적 해결’ 논리는 그러나 대북 뒷거래가 실정법상 명백히 탈법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수긍하기가 매우 어렵다.

아무도 모르게 감춰져 있었다면 모르겠으되 만천하에 탈법이 공개된 상황에서 행위의 당사자들 스스로가 나서서 사법적 처리의 대상에서 제외시키자고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무리 정치권 논리라 하지만 무리이다.

국회 국정조사라든가 청문회, 또는 대정부 질문 등의 제도가 국민적 의혹을 밝히는 나름의 정치적 수단이긴 하다. 하지만 국민들은 지금까지 국회라는 마당을 통해 의혹사건이 규명되는 것을 본 기억이 없다. 국회가 가진 가장 강력한 수단이 국정조사일텐데 여(與)와 야(野)로 나뉘어 말싸움이나 벌이는 국정조사는 당리당략에 좌우되는 정치 공방의 장(場)일 따름이다.

여당 의원들은 필사적으로 집권층의 약점이 노출되는 것을 막으려 할 것이고, 야당 의원들은 TV에 자기 얼굴이 등장하는 빈도로 성공 여부를 판단하려 할 공산이 크다. 말꼬리 잡고 이어지는 공허한 논쟁이 이어지다가 종국에는 감정적 화풀이에 그치고 말 것이라는 게 그간의 경험이 일러주는 바다. 게다가 문희상(文喜相) 대통령 당선자 비서실장 스스로가 이미 “진상 규명을 해봐야 실익이 없다”며 경계선을 그어놓았지 않은가.

또한 국회에서의 조사는 진상 규명 후의 ‘뒤처리’를 전제로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검찰의 수사와 다르다. 대북 뒷거래 의혹은 그 진상이 밝혀질 경우 많은 탈법·위법이 드러날 가능성이 큰데 ‘응분의 처벌’을 애초부터 배제하고 접근하는 국회의 조사는 사법권 행사를 봉쇄하는 수단일 뿐이다.

집권층 핵심들이 거론하고 있는 ‘정치적 해결’이란 아마도 대북 뒷거래가 어떤 중요한 대의(大義)를 위한 일이었으므로 일정한 한계 내에서의 사실관계만 밝히고 국민들의 이해를 구하자는 취지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만일 선의(善意)가 불법적 수단을 정당화하게 된다면 우리 사회는 그 순간 난장판이 된다. 국민이 법률을 지키는 것은 법이 정하는 바가 반드시 옳다고 해서가 아니라 법을 지키지 않을 경우 사회가 무질서의 혼돈 상태로 빠져들고 말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국책은행에서 수천억원의 돈을 마치 뒷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듯 빼내서 국민 모르게 북한에 넘긴 행위를 불문에 부치자고 하면 앞으로 누가 국민들에게 법을 지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과연 그게 국가 이익을 위한 일이었는지도 아리송한 상태다.

만일 검찰이 수사를 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면 그것은 검찰로서도 스스로의 결정을 뒤집는 일이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검찰은 이미 정몽헌(鄭夢憲)씨 등 17명에 대해 출국금지 등의 조치를 취해 놓았다. 사건 배당까지 끝내고 출국금지까지 해놓은 마당에 발을 뺀다는 것은 ‘정치권 주문에 따른 수사 중단’으로밖에 달리 해석할 수 없다.

검찰이 수사 착수 여부에 대한 판단을 놓고 정치권에 기대는 듯한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은 사법기관으로서의 체통을 스스로 손상시키는 부끄러운 일이다. 정치인들 말 몇마디에 뽑았던 칼을 엉거주춤 거둬들인다면 검찰의 독립을 거론할 자격도 없다고 하겠다.

향후의 남북관계가 국민적 합의와 도덕적 정당성의 토대 위에서 건강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도 가릴 것은 분명히 가리고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렇지 않다면 다음 정부가 북한측과 어떤 생산적 논의를 진행시키더라도 국민들은 음습한 공작의 냄새부터 맡으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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