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문희상 비서실장 내정자가 어제 대북 비밀지원 의혹에 대해 검찰 수사를 반대하는 입장을 발표한 것은 국민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이보다 불과 열흘 전쯤 노 당선자는 야당을 방문해 “검찰이 정치적 고려 없이 원칙적으로 수사해주길 바란다”는 정반대의 입장을 분명하게 밝힌 바 있기 때문이다.

문 내정자가 어제 “노 당선자 입장이 아니라 내 입장”이라고 밝혔지만, 그것을 곧이 곧대로 믿을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새 정권측의 입장이 불과 열흘 전의 ‘검찰 수사 촉구’에서 ‘검찰 수사 불가’로 뒤집혔다면 그 곡절에 대해 설명을 하는 것이 정권 담당자들의 국민에 대한 올바른 태도일 것이다.

특히 노 당선자가 “검찰이 수사하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밝힌 것은, 문 내정자가 “(대북 지원은) 통치행위로 사법 심사의 대상이 아니다”고 말한 다음이었다. 이것은 노 당선자가 대북지원을 ‘통치행위’로 보지 않는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이제 다시 통치행위로 보기로 했다는 것인지 설명이 있어야 할 것이다.

신·구 정권 교감설에 대해서도 국민의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문 내정자가 먼저 ‘검찰 수사 불가’ 운을 떼고, 곧이어 현대상선이 4000억원 관련 자료를 감사원에 제출하자, 때맞춰 새 정권 관계자가 “북한으로 간 것 같다”고 언론에 확인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다음날 ‘사법심사 대상이 아니다’고 발표하고, 다시 감사원이 이 문제를 검찰에 고발하지 않는 이 일련의 수순은 신·구 정권 간의 어떤 ‘각본’의 냄새를 풍기고 있다.

이 진행 과정에서 검찰은 또 한번 위상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검찰은 노 당선자가 “검찰 수사 필요”를 언급하자, 정몽헌씨 등을 출국금지 시키는 등 수사 채비를 서둘렀으나, 돌연 엉거주춤한 입장으로 바뀌었다. 검찰은 현 상황이 정치적으론 곤혹스러우나 법의 수호자로서는 기회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유념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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