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와 현대그룹은 북측의 이번 금강산 관광객 억류사건을 대수롭지 않은 일로 치부하고 있는 듯 하다. 북한을 자극하는 발언을 했으면 조사받는 게 당연하고, 합의사항을 위반하는 행동을 했으면 사죄문도 써야 한다는 식이다. 우리도 금강산 관광객 한모(38)씨가 북측 환경감시원(안내원)에게 휴대전화를 내보이며 남쪽이 잘 산다는 것을 은근히 자랑하면서 북한은 김일성과 김정일만 잘 먹고 잘 산다고 발언한 것은 그 상황에서 그리 잘된 처신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한씨를 그렇게 다룬 북한 태도가 정당했다는 인식에는 동의할 수 없다.

이번 사건은 지난 번 민영미씨 사건과 달리 관광객 억류 기간이 길지 않고 강압적인 분위기가 덜했을 뿐, 북한이 마음만 먹으면 우리 관광객의 안전을 언제든지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드러냈다. 현대측은 지난 번 민씨 사건 이후 북측이 금강산 관광객에 대해 일방적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된 금강산 관광세칙 조항을 고쳐 ‘문제 발언을 한 관광객은 즉시 관광을 중지시키고 추방하도록’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이 조항이 휴지 조각에 불과함이 이번에 드러난 것이다. 북측은 ‘즉시 추방’ 대신 일방적으로 한씨를 여러 시간 동안 억류했다. 그런데도 현대측은 북측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항의 한 마디 하지 않았다.

나아가 한씨가 사죄문 쓰기를 거부하자 강력한 형사사건 등 중대 사건이 발생했을 경우에만 열도록 되어 있는 ‘금강산 관광사업 조정위원회’를 자청해 열고 한씨가 사죄문을 쓰도록 하겠다고 북측에 약속까지 했다. 본말(본말)이 전도된 처사다. 앞으로의 유사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도 당연히 합의서 대로 처리해 줄 것을 강력히 요구했어야 마땅한 데도 북측 장단에 놀아난 꼴이다. 금강산관광에 문제가 발생하면 현대로서는 아무 득될 게 없다고 하지만 관광객의 안전을 그렇게 내팽개쳐도 좋은지 의문이다.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통일부가 이번 사건을 의도적으로 대수롭지 않은 일로 끌고 가려는 태도다. 통일부는 이 사건 발생기간 동안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열렸으나 이 사건은 보고조차도 하지 않았으며 사건 발생 이틀 후에야 국민들에게 사건 진상을 알렸다. 혹시라도 햇볕정책에 영향을 끼칠까 봐 그랬는지 모르지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모든 것에 우선한다. 금강산 관광객 신변 안전 보장조항은 다시 보완해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당국간 합의를 끌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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