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감탄한 北韓의 집단체조는 사실 북한 말고는 그 어느 나라도 흉내낼 수 없는 엄청난 것이다. 2000년 10월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북한 방문 때에는 종전에는 볼 수 없었던 인민군 특수부대의 무술훈련시범까지 실시 되었다.

북한의 집단체조는 몇 년에 한번씩 하는 행사가 아니다. 엄청난 인력과 자금이 소요되는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일년에 몇 번씩 진행할 정도로 그 빈도가 높다. 특히 외국의 중요한 국가수반의 방문이나 나름대로 의미가 깊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연례행사처럼 진행하는 것이 집단체조이다. 보통 6만명 규모이지만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 방북때 열린 집단체조에는 10만 명이 동원되었다고 하니 미국에 대한 북한의 관심이 높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북한의 집단체조는 지난 1947년 김일성의 지시에 의해 첫선을 보인 이후 1971년 11월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산하에 `집단체조 창작단`이 설치되면서 북한특색의 집단체조가 활성화되었다. 현재는 평양체육대학에 집단체조학부 창작학과가 별도로 있을 정도로 전문가 양성을 체계적으로 하고 있다.

집단체조는 평양의 중심부에 살고 있는 청소년들에게는 고등학교 시절에 한번은 꼭겪어야 하는 추억의 하나이다. 때론 참을 수 없는 고통까지도 안겨주지만 김일성, 김정일을 눈앞에서 '모신다'는 긍지 때문에 어린 마음이지만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보통 집단체조가 있을 경우에는 큰 행사인 경우는 6개월, 보통행사는 4개월 정도의 기간이 소요된다. 5만명 이하일 경우에는 평양시 중심부에 있는 학교에서도 충당이 되지만 그 이상일 경우에는 평양시 외곽지역에서도 학생들을 뽑는다, 고등중학교 3학년부터 6학년 사이의 학생들이 주로 참여하는데 몸이 아주 안 좋은 학생과 특별히 불량한 학생을 제외하고는 전학년의 학생들이 참여한다.

학생들이 정해지면 약 한달 동안은 집단체조에 필요한 각종 행사품들을 장만하고 그것을 맞추는데 보내진다. 특히 배경 대에 서게 되는 학생들은 행사에 사용할 큰 책 모양으로 된 카드섹션을 준비해야 하는데 각 페이지마다 고유번호가 정해져 있고 색깔과 무늬가 정해져 있다. 이 카드섹션을 만드는 과정을 작도(作圖)라고 한다. 색종이는 전부 외국에서 수입한 것으로 쓰여졌는데 최근에는 이런 것마저도 개인들이 무조건 준비하게 해 학부모들의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한다.

작도는 보통 100 페이지나 되며 매 페이지마다 색깔과 무늬가 다 틀리다. 학교 담임 선생의 지도로 페이지마다 색종이를 일일이 붙이는 작업을 각자가 알아서 한다. 페이지마다 고유 번호가 매겨져 있으며 이 번호는 전부 암기하여야 한다. 카드책이 거의 만들어 질 무렵부터는 본격적인 훈련에 들어간다. 만들어진 카드책은 한 작품이 다 끝날 때까지 보존되며 나무함으로 만들어진 끈 달린 케이스에 넣고 다니며 행사가 다 끝나면 학교에 보관한다.

보통 한 학급이 45~50명 정도인데 배경대의 세로로 한 줄이 한 학급이다. 인원이 모자랄 경우 몇 명이 보충되기도 한다. 한 줄의 총책임자는 담임선생이다. 그리고 학교단위의 책임자는 체육선생과 사로청위원장이 책임지며 이들은 또 체육위원회 소속 전문가들의 지도를 받는다. 체육지도위원회 전문가들로부터 각 담임선생들이 1차교육을 받고 각학급을 지도하며, 김일성,김정일 부자가 나오는 주석단 아래 부근에 총지휘자가 있다. 총지휘자는 수기를 가지고 각 부분별로 수기로 지휘를 하며 지휘를 받은 각 학교별 책임자는 각 학급별 담임선생에게 전달하는 식으로 일사불란하게 지휘가 하달된다.

여기서 가장 힘든곳은 배경대의 학생들이라고 한다. 10kg정도 되는 작도를 메고 집에서 경기장까지 다녀야 하며 훈련 내내 그것을 들고 선생의 지령에 따라 펼치고 접고 어떤 때는 머리를 숨기는 등, 갖가지 동작을 하나하나 익혀야 하는데 보통 일이 아니다. 특히 숫자는 확실히 외어야 한다. 옆사람이 무엇을 내었나 고개를 돌리는 순간을 벌써 실수가 저질러지는 순간이기 때문에 이런 학생들에 대한 처벌이 엄청나다. 사람 수가 많아 작은 실수는 그냥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자그마한 실수도 바로 눈에 띄기 때문에 요행수는 통하지 않는다. 실수한 학생들은 선생들에게 지시봉과 막대기로 사정없이 얻어맞는다. 이렇게 라도 하지 않으면 그 수많은 학생들을 통제할 수 없다.

만약 실전에서 어떤 실수가 일어난다고 가정하면 엄청난 사건이 아닐 수가 없다. 배경 대에서도 중심은 특히 중요하다. 그것은 거기에 수령의 영상이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다. 한사람이라도 실수해 얼굴에 점이라도 생기는 날이면 목이 열 개라도 살아날 수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1호행사(김 부자가 나오는 행사)는 사생결단하고 준비하지 않을 경우 학생들의 실수는 막을 수가 없다. 하루 훈련은 아침 7시부터 저녘 12시까지 진행된다. 점심은 도시락을 각자가 준비한다. 점심 국은 학부모들이 교대별로 사비를 털어 준비한다고 한다.

고된 훈련으로 두세 달이 지나면 입술이 트지 않은 학생이 없다. 입술이 트다 못해 입 옆까지 다 찢어져 상처가 아물지 못해 입도 못 벌릴 정도라고 한다. 이 상태로 지속되면 나중에는 귀까지 하얗게 터서 갈라진다고 한다. 훈련 도중 몸이 약한 학생들은 도중에 쓰러지기도 하는데 이때는 예비로 보충해 놓은 학생으로 즉시 보충된다.

거의 모든 학생들의 상태가 이러해도 오직 충성심 하나로 모든 것을 이겨낸다. 실전이 가까워 오면 훈련의 강도는 더욱 높아진다고 한다. 그 어려운 수자외우기도 몇 달씩하고 나면 눈감고도 외울 정도가 된다. 앞에 선생이 수신호를 하면 이에 맞추어 카드가 일시에 쫙 쫙 움직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일사불란하게 무늬가 놓아지는 것을 보면 묘한 감정까지 생긴다. 이럴 때에는 학생들 모두가 뿌듯함을 느낀다.

행사시작 2시간 전부터 모든 용변은 다 보게 하지만 북한의 행사는 날이 추운 계절인 이른봄과 겨울에 집중되어 있어 추위와 긴장으로 자주 소변을 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행사 시작하기 30분 전부터는 일체 모든 학생들은 각자 위치에 들어가야 한다. 특히 배경대의 경우는 워낙 자리가 좁아 일단 들어가면 움직일 수가 없다. 그래서 행사를 전후해서 4시간 정도는 모든 것을 참아야 함으로 용변을 볼 수 있는 그릇까지 준비해야 한다. 최악의 상황을 미연에 막기 위해 학생들은 되도록 물은 가급적으로 마시지 않는다. 그래도 신체별로 차이가 있고 설사라도 만난 학생은 그날은 죽음을 각오하는 자세로 행사에 참가해야 한다. 행사가 한창일 때에는 까딱 움직였다가는 큰 실수가 발생되기 때문에 죽는 한이 있어도 제자리를 지켜야 한다. 그래서 경사진 배경 대 바닥에는 선 채로 용변을 보는 학생들로 인해 밑으로는 오줌이 흐르고 냄새가 코를 찌르지만 행사가 한창일 때에는 이런 것에 신경쓸 겨률이 없다.

여학생들의 경우에는 무대에서 집단예술체조를 한다. 몸의 유연성과 체질에 관계없이 학년 전체가 동원되다 보니 엄청난 무리가 따른다. 몇 명씩 달라붙어 다리찟기 부터 시작해 앞전, 뒷전, 줄 동작, 등 갖가지 맹훈련을 시키는데 하루에 완수해야 할 동작이 안나오면 집에도 보내지 않는다고 한다.

이렇게 6개월 정도 훈련하면 아예 체형이 바뀔 정도가 된다. 아무리 뚱뚱한 여학생들도 날씬하고 탄력 있는 몸매로 바뀌어 진다. 엄청난 고통도 따르지만 모든 것을 이겨낸 여학생들에게는 오히려 완전 강제적으로 몸매가 가꾸어질 정도라고 하니 훈련의 강도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 모든 고통을 이겨내고 김정일이 주석단에 나와 '용안'을 보게 되면 학생들의 마음은 흥분으로 부풀어 오른다. 지금까지의 모든 고통이 한순간에 다 날아가 버리는 듯한 느낌도 함께 받는다. 모든 행사가 성공적으로 끝나고 김정일의 칭찬을 받으면 모든 고통을 한순간에 사라지고 마음은 긍지로 가득 찬다.

행사가 끝나면 갖가지 사연들이 공개되어 표창을 받는다. 어떤 학생은 행사기간에 부모가 사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참가한 것이 알려져 청소년의 최고훈장인 김일성청년영예상을 받은 학생도 있다고 한다. 또 학급별로 표창장도 주어지며 모범적인 학급, 학교에는 각종 상들이 주어진다.

1985년 중국공산당 총서기 호요방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집단체조에 참가했던 조승군(33)씨는 행사가 끝나고 6만명의 모든 학생들에게 돼지고기를 정육으로 1킬로 반씩 공급했는데 그 고기로 온집안 식구들이 모여 앉아 먹을 때에는 수령에 대한 충성심과 처음으로 가족들에게 자기 힘으로 무엇을 한 것 같은 뿌듯함으로 큰 자부심을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1995년에 2차례나 집단체조에 참가한 한수정(20, 평양련광고등중학교출신) 씨는 행사가 끝난 후 역대 참가자들보다 엄청난 선물을 받았다고 한다. 그 때 '김정일 장군님의 통큰 지시에 의해 매 개인 당 이태리 가방, 금촉 만년필, 제도기, 고급노트 등을 선물로 받아 참가자 모두가 엄청난 감동과 고생한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김정일은 행사가 끝날 때 마다 선물을 하사하는데 매번 종류가 틀려진다고 한다. 역대 그 어떤 행사때 보다도 집단체조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선물 하나는 푸짐하게 준다는 것이 참가자들의 이야기다. 김정일이 크게 만족한 경우에는 행사기간동안 특출한 공로를 세운 자에게 컬러TV 까지 하사한다. 남한으로 넘어온 탈북자 가운데는 집단체조에 참가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한결같이 그 당시는 충성심 하나로 견디어 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쓸데없이 아이들만 혹사시키는 불필요한 행사였다고 말한다./ 강철환 기자 nkch@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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