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말했듯이 북한도 사람 사는 곳이다. 사람 사는 곳에는 반드시 남녀간의 사랑 이야기가 있다. 남한에는 소설이라든가 영화, 드라마 등 사랑을 주제로 한 내용들이 너무나 많다. 사랑이야기가 가장 보편적으로 사회와 생활의 이슈로 등장하고 소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놀랍기도 하다. 사랑이라는 주제가 없이는 아예 이야기거리가 안되니 말이다.

북한에도 사랑이야기는 많다. 그러나 남녀간의 사랑에 관한 영화를 만든다던가 하는 일은 아주 예외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신상옥감독이 북한에 가서 영화를 만들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도 느꼈고 또 북한주민들이 신상옥감독의 영화를 보고 감동했던 것도 그만큼 북한사회가 사랑문제를 혁명성과 결부시키는 바람에 순수한 남녀간의 애정표현은 아직 북한사람들에게는 어색한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1990년 초에 평양시민을 감동시킨 사건이 발생했다. 평양의 유명 대학에 재학 중인 두 청춘남녀의 시체가 방공호에서 발견된 사건이다. 북한전역을 두눈뜨고 봐도 평양사람들이 그중 사람들이 많이 개방적이고 남녀간의 데이트도 노골적이진 않지만 지방사람들 보다는 세련되고 과감하다. 그러나 자본주의 나라들처럼 길거리에서 애정표현을 한다던가 어깨 걷고 남녀가 걸어가는 장면은 아직까지는 평양에서도 조차 낮선 모습이다.

평양에는 남녀가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 거의 없다. 커피숍과 같은 곳은 물론 호텔이나 여관 같은 곳에 남녀가 함께 들어갈 수 없다. 부부가 출장을 와도 남, 여 방이 엄격히 구분되어 있을 정도다. 그러니 젊은이들이 유일하게 데이트할 수 있는 곳은 평양 대동강가의 우거진 나무숲이나 모란봉, 대성산 유원지같은 곳이다.

사건의 주인공인 두 젊은이도 자기들만의 공간을 찾아 여기저기 헤매다가 방공호를 발견한 것이다. 평양에는 지하철과 함께 유사시를 대비해 커다란 방공호를 만들어 놓고 있다. 평양시는 15일에 한번씩 공기를 갈아주기 위해 이곳의 문을 열고 닫고 했다. 이런 것을 알리없는 이들은 아늑한 공간을 발견하자 잠시 데이트하려고 그곳을 선택했다.

어두운 방공호 안에서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르고 있던 그들은 방공호 문이 닫히는 바람에 꼼짝없이 그 곳에 갇히게 되었다.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이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절망에 빠진 이들은 그곳에서 빠져나가려고 구석구석을 보았지만 콘크리트로 워낙 견고하게 만들어진 곳이라 절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보름을 견뎌야 했다. 어둠이 몰려오자 이들은 아마 공포에 질렸을 것이다. 마침 방공호를 관리하는 관리원이 휴가를 가는 바람에 방공호를 여는 날짜가 며칠 더 늦어지게 됐다. 결국 20일 후에 관리원이 다시 와서 방공호를 열었는데 두 젊은 남녀의 시체가 그곳에서 발견된 것이다. 그런데 이 광경을 본 관리원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당국에 바로 신고됐고 사인이 밝혀졌다.

시체를 보니 남자의 손가락이 여자의 속옷으로 하나하나 감싸져 있었다. 남자친구가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 손가락으로 땅을 파헤치는 바람에 손끝이 다 헤져 피가 나온 채로 먼저 죽은 것이다. 그곳을 빠져나올려고 필사의 노력을 한 남학생의 애타는 노력이 손가락에 남은 것이다. 남학생이 죽은 후 나중에 살아남은 여학생은 자기 남자친구를 위해 자기 속옷을 찢어 그의 손가락 상처를 하나하나 싸매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남자친구를 위에서 감싼 채 함께 나란히 죽었다. 이 사건을 담당했던 안전원은 물론이고 이 소문이 삽시간에 평양의 젊은이들 사이에 감동의 사랑스토리처럼 퍼져나갔다. 모든 사람들은 나중에 죽은 여학생의 행동에 감동을 받을 모양이었다. 죽는 순간에도 남자친구를 위해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이 무슨 대화를 했고 어떻게 최후를 맞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함께 죽어 영원한 사랑을 이루게 된 이들을 위해 양가의 부모님을 비롯한 모든 평양 주민들이 명복을 빌어주었고 그들의 영원한 사랑을 축복해주었다./ 강철환 기자 nkch@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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