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인들이 남한에 와서 놀라는 것들 가운데는 아파트나 큰 건물을 지을 때 사람이 안 보인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거대한 고층건물이 쭉쭉 올라가고 있는 것을 보면 신기해 한다. 북한에서는 1985년 이후부터 세계청년학생축전을 비롯한 여러 가지 행사를 맞아 수도 평양을 현대화하기 위한 공사를 본격적으로 벌였다. 그 가운데 하나가 평양 광복거리와 통일거리 건설이다.

수만 가구를 한꺼번에 짓는 대형공사였기 때문에 엄청난 외화와 인력이 투입되었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젊은 청년들로 이루어진 돌격대원들과 인민군 군인들이 건설장에 동원되어 인력으로 거의 밀어 붙이다시피 아파트 건설이 진행된 것이다. 아파트 하나를 짓는다면 그 밑에 사람들이 개미떼처럼 일하고 있다. 기계가 없어 거의 인력으로 모든 공사를 진행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각종 사고들이 끊임없이 일어나지만 인명경시풍조가 만연한 북한에서는 그런 사건들은 별 무리 없이 처리된다.


◇사진설명: 많은 사람들이 투입된 아파트 건설현장.

지금 건설된 광복거리, 통일거리는 디자인이 화려하고 북한에서는 가장 훌륭하게 지어진 아파트다. 원형(圓形)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모양으로 설계하였다. 건설할 아파트마다 동원된 각 조직별로 맡아 진행되었는데, 붕괴된 이 아파트는 인민군공병부대소속 군인들이 동원되어 짓고 있던 아파트였다. 1992년 김정일의 생일 2.16일을 맞아 총력전을 벌려 철야로 노력한 끝에 드디어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던 찰나였다. 많은 군인들이 아파트 내부공사에 동원되어 있었고 아파트 아래에는 행사준비를 하는 군인들이 상당수 몰려 있었다고 한다.

날씨가 아주 추운 날에는 콘크리트 공사를 중지하거나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공사를 진행했어야 하나 당에서 제시한 기한까지 무조건 끝내라는 상부의 지시가 화근이었다. 영하의 추위 속에서 진행된 콘크리트가 추위로 인해 제대로 굳어지지 않았고 얼어있던 건물이 봄날 따뜻한 기운이 돌자 물먹은 담벽처럼 거대한 아파트 한 채가 무너져 버린 것이다. 맞은편 아파트에서 공사하던 군인들은 앞건물이 점점 아래로 내려앉자 자기들의 건물이 위로 올라가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지진이 일어났다"고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사망자수는 북한당국이 공개하지 않아 파악할 수 없으나 11호병원(軍전용 초대형병원)도 모자라서 평양시 구역병원은 물론 평양시의 인근 郡 병원에까지 부상자들이 들이닥친 것을 보면 사망자는 최소 200~300명 정도, 부상자 수도 그 두 세 배는 족히 되는 것으로 짐작된다. 전 평양시민이 달라붙어 환자치료에 필요한 음식물 제공과 치료에 필요한 여러 가지 물건을 지원했다. 아예 각 기관별로 환자를 몇 명씩 맡겨 놓고 치료와 부식물 공급 등을 책임지게 했다.

무너진 아파트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별지시로 <제2경제위원회에서 맡아 빨리 건설하라>는 명령과 함께 최대한 비밀이 외부로 알려지지 않게 철저히 봉쇄할 데 대해 지시가 내려졌다. 그 이후 무너진 아파트는 제2경제 소속 청년돌격대원들이 총동원돼 그 다음해 4월까지 완공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평양통일거리 아파트 붕괴사고는 평양시민은 물론 전 북한에 알려진 유명한 사고이다. 희생자가 워낙 많아 전국각지에 유가족들이 있었지만 이들에게 주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북한에는 사고 시 돈으로 보상하는 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죽은 사람만 불쌍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희생자 대부분이 20대 초반의 젊은 청년들이어서 더 큰 아픔이었다. 남한 같았으면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처럼 온 나라가 난리 나고 전세계에 생중계될 사건이지만 지독한 폐쇄사회인 북한에서는 이러한 엄청난 사건이 주민들의 입과 입을 통해 쉬쉬하며 전해졌다./ 강철환 기자 nkch@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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