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사람들의 이름에 남한에서는 보기 드문 ‘히’자가 눈에 많이 띈다.

2차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북한에서 보내 온 200명의 명단에는 ‘이히배’, ‘박상히’, ‘강히중’, ‘강득히’ 등의 이름이 들어 있다. 97년 9월 총살당한 것으로 전해진 전 북한 농업상도 ‘서관히’이다.

그의 이름을 놓고 일부 한국 언론에서는 일본이나 중국의 표기를 빌어 ‘서관희(서관희)’라고 적기도 했으나 북한 노동신문 등은 그의 이름을 분명히 ‘서관히’라고 했다. 광복 직후 김일성종합대학 졸업앨범을 살펴 봐도 ‘히’자를 가진 학생들이 많다.

북한 이름 속의 ‘히’는 ‘희’를 소리나는 대로 적은 것이다. 그렇다고 북한에서 ‘희’를 모두 ‘히’라고 적지는 않는다. 이산가족 상봉 대상자 명단에는 ‘양희지’, ‘김희복’, ‘이병희’, ‘최병희’ 등의 이름도 들어 있다.

북한의 맞춤법 규정(조선말 규범집 27항)은 “한자말에서 모음 ‘ㅢ‘가 들어있는 소리마디로는 ‘희’와 ‘의’만을 인정한다”고 하고, 그 용례로 ‘순희, 회의, 희망, 유희, 의견, 의의’를 들었다. 그럼에도 유독 이름에는 실제 발음을 살려 ‘히’로 쓰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이다.

남한에서도 과거 이름에 ‘히’자를 쓰기도 했다. 해공 신익희(신익희) 선생도 선거 벽보에 ‘신익히’라고 써 붙였던 적이 있다.

남북한이 모두 맞춤법의 원천으로 삼고 있는 1933년 조선어학회의 한글맞춤법통일안의 표기 원칙은 ‘소리나는 대로 쓰되 어법에 맞게 쓰는 것’이다. 이 원칙에 따라 ‘긔차’는 ‘기차’로 적게 되었다.

다만 한자어 ‘희’의 경우는 소리나는 대로 ‘히’로 적지 않고 ‘희’로 적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에도 논란이 있어 장지연 선생의 ‘조선철자법강좌’에는 ‘히’가 맞는 것으로 되어 있다.

국립국어연구원의 학예연구관 양명희 박사는 “이산가족 명단에 오른 ‘히’를 가진 사람들은 모두 70대인 것으로 보아 해방 전부터 ‘히’를 쓰다가 해방 직후 북한에서 공민증을 발급할 때 굳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현행 남한의 맞춤법은 1989년 개정안을 따르고 있는데 당시 논의 과정에서 “‘희’로 써 놓고도 사실상은 ‘히’로 읽고 있으니 ‘소리나는 대로 적는다’는 원칙에 맞지 않는다”는 문제 제기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가령 ‘이희승’ 선생의 경우 100년 동안 이렇게 써 왔는데 이제 와서 ‘이히승’으로 쓰면 이상하지 않겠냐는 등의 반론에 부딪혀 ‘히’가 채택되지 않았다고 한다. /김미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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