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 열린 제9차 남북장관급회담에 참석한 북측 대표단이 첫 회의에서 보인 언행은 한국민들에게 큰 실망과 분노를 안겨주었다. 이들은 기조연설에서 북핵(北核) 문제와 관련해 남한이 미국과의 공조를 버리고, 북한과 이른바 ‘민족공조’를 이루어야 한다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

더구나 이들은 관례에도 없는 회의 공개를 요구하는가 하면,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기조연설문을 한국의 특정 방송사에 건네 일방적으로 공개해 버리는 무례도 서슴지 않았다. 서울에서 한국 국민을 상대로 반미(反美) 선전선동을 직접 펼쳐보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북한대표단의 이런 오만하고 치졸한 태도는 북한당국의 근본적인 대남(對南) 인식과 전략이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북쪽의 재난은 곧 남쪽의 재난’이라거나 ‘북의 선군(先軍)정치가 없었다면 조선반도에는 열 백번도 더 전쟁이 터졌을 것’이라는 기조연설의 위협적 언사(言辭)들은 9년 전의 ‘서울 불바다’ 발언을 연상케 한다.

북한은 핵문제에 대한 한국민들의 생각을 정확히 알고 부질없는 책동을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 정상적인 한국민이라면 민족공조란 이름으로 북한의 핵무기 개발까지 용인할 사람은 거의 없다. 남한 내의 일부 반미 기운을 곧바로 북한식 민족공조와 연결시킨다면 그것도 큰 오산일 뿐이다.

북한이 그토록 민족공조를 원한다면 다른 것 다 두고라도 남북 간에 합의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부터 지켜야 한다. 민족공조를 외치면서도 공조의 기반을 허물고 민족의 운명을 위협하고 있는 것은 북한인 것이다.

북한은 지난번 8차 장관급회담에서 합의한 대로 이번 회담에서 핵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하고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진정한 민족공조를 위해서는 북한부터 변해야 한다.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