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의 대북(對北) 4000억원 비밀지원 의혹에 대한 감사(監査) 결과는, 결국 이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해선 검찰의 본격적인 수사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새삼 입증하고 있다. 이번 감사로 의혹이 규명되기는커녕 오히려 궁금증만 더 키운 꼴이 됐기 때문이다.

일단 감사원이 확인한 사실 중 눈에 띄는 것은, 문제의 4000억원 중 2240억원 가량의 거액이 국내에서 사용된 근거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산업은행에서 이 돈을 대출받은 현대상선측은 줄곧 ‘운영자금’이라고 밝혀왔다. 만약 정상적인 기업 운영자금이라면 수표의 사용처조차 밝히지 못할 이유가 없다. 한나라당이 오래 전부터 해외계좌를 통한 대북 비밀송금 의혹을 제기해 온 만큼 2240억원이나 되는 돈이 ‘사용처 불명’으로 나타났다는 것은 아무래도 예사롭지 않다.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감사원 스스로 현대상선이 회계장부 등의 자료를 제출하지 않아 더 이상의 조사를 진행할 수 없었다며 검찰에 고발키로 한 대목이다. 현대상선측은 지난 두달여 동안 3차례씩이나 ‘업무상 이유’를 들어 자료제출을 거부했다고 하는데, 정부나 현대상선 모두 아예 국민을 우롱하기로 작심한 모양이다.

문제의 돈을 대출해 준 산업은행의 전·현직 간부들까지 “한달만 계좌추적 하면 그 전모가 밝혀질 것”이라고 호언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국민적 의혹으로 발전한 이 사건의 당사자인 현대상선이 사소한 구실을 들어 자료제출을 거부한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감사원이나 정부의 태도도 마찬가지다. 만약 감사원이 민간기업인 현대상선에 대해 자료제출을 강제할 수 없었다면 진작에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어야 한다.

검찰은 이제 국가적 명예를 걸고 이 사건의 전모를 밝혀야 한다. ‘남북 뒷거래설’이 남아있는 한 떠나는 김대중 정부나, 곧 취임할 노무현 정부 모두 산뜻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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