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최근 남·북간 합의한 일정들을 일방적으로 연기하는가 하면, 한적(한적) 총재의 ‘사퇴’를 요구하고 남한 이산가족 방문단의 일원인 사진기자를 억류한 데 대해 우리 정부는 아무런 대응을 않고 있다.

박재규(박재규) 통일부 장관이 ‘기자 억류’와 관련, 뒤늦게 “4차 장관급회담 때 강력히 항의하고 재발방지를 요구하겠다”고 밝혔으나, 효과를 기대하는 사람들도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그만큼 대북정책이 국민들의 신뢰를 잃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북한의 움직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우선 우리의 자유민주체제를 인정하지 않는 자세에 대해선 ‘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했다. 북한 전문가 이항구(이항구)씨는 “남한 언론보도를 문제삼는 것을 묵인하면, 우리 내부 분열이 조장된다”고 했으며, 정세현(정세현) 전 통일부차관은 “남한 언론이 북한 노동신문과 다르다는 점을 북한이 깨닫도록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측의 협상 태도를 문제삼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경수로 협상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미국은 ‘합의사항’을 쉽게 바꾸지 못한다는 점을 늘 북한에 인식시켰다”면서 “원칙을 강조한다는 것 자체가 상대를 밀어붙이는 것과는 엄연히 다르다”고 말했다. 한 전문가는 “합의서 도출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 협상문화를 확립하는 것이 남북관계 진전에 도움이 될 때도 있다”고 말했다.

북한에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 주문하지 말라는 지적도 있었다. 정상회담 이후 이산가족 행사, 장관급 회담, 경제 회담, 국방장관급 회담, 사회·문화 교류 등 정신을 못차릴 정도로 일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정세현 전 차관은 “너무 많이 일을 벌이면 북한이 움츠리며 예민한 반응을 보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종석(이종석) 세종연구소 연구위원도 “북한이 체제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화가 가능한 수준에서 사업들을 추진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납북자와 국군포로 문제를 이산가족 차원에서 해결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 이들을 ‘자진 월북자’로 받아들이는 명분을 제공할 위험도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이산가족 사업에선 인도적 차원에서 양보할 수도 있으나, 다른 회담에선 엄격한 상호주의가 적용돼야 한다는 주문도 했다.

/김인구기자 gink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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