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북됐다가 돌아온 대한민국 국민을 어떻게 탈북자와 똑같이 대우할 수 있는 겁니까. ”

지난 7월 납북 어부로는 최초로 생환한 뒤 당국의 교육과정을 거쳐 이달 초 변변한 가재도구 하나 없는 방 2칸짜리 12평 임대아파트에 보금자리를 꾸민 납북자 이재근(이재근·62)씨 가족. 30년 만에 고국 땅을 다시 밟고 애국가를 부르며 한없이 눈물 흘렸다는 이씨는 “직업도 없어 앞으로 살 길이 막막하다”며 무겁게 입을 뗐다.

봉산22호의 평범한 어부였던 이씨는 70년 4월 29일 서해 연평도 근해에서 북한 경비정에 납치됐다가, 98년 8월 부인 김성희(김성희·58)씨, 아들 성재(성재·24)씨와 함께 목숨 건 탈북에 성공, 중국에서 1년 반을 전전하다 국내로 돌아왔었다.

이씨는 입국 뒤 경기도 안성의 ‘탈북자 교육시설’인 하나원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지난 1일 교육을 끝내고 ‘대한민국 사회’로 복귀했다. 하지만 이씨는 북한 국적으로 남한에 귀환한 일반 ‘탈북자’에 준하는 대우를 받아 보상금 6700만원을 받게 된 것이 전부였다. 호적은 ‘대한민국 국민’이지만 ‘생환 납북자’를 처리할 마땅한 법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모진 고초를 겪으며 28년 내 청춘을 북한에서 보냈습니다.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갈 거라며 이를 악물고 버텼습니다. 그런데 목숨 걸고 탈출한 납북자를 이렇게 천대하다니…. ” 이씨 가족은 4일 최성룡(최성룡·50·납북자가족모임 대표)씨 등 납북자 가족 3명의 방문을 받고 ‘서러움’을 토해냈다.

“정부가 납치된 자국민을 구해오는 기본 책무도 하지 않더니, 이젠 스스로 생환한 납북자에 대한 어떤 대책도 세우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 북한에 억류된 납북자 480여명과 그 가족들은 남북에서 수십년 동안 고통 받고 있습니다. 이들의 상처를 어루만져 줄 ‘납북자 송환과 대우에 대한 특별법’을 하루빨리 만들어야 합니다. ” 이씨는 “컴퓨터 공부에 열심인 아들 성재가 대학생이 되는 게 꿈”이라며 “아파트 경비라도 해서 생활비를 벌어야겠는데 경제가 어려워져 그도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는 함께 납북된 27명 중 20명이 그 해 11월 29일 어선과 함께 송환됐지만, 자신을 비롯한 나머지 7명은 강제 억류된 뒤, 간첩 양성기관인 중앙당 정치학교에 보내져 2년 반 동안 침투 특수훈련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그러나 정치학교를 졸업한 뒤 사상이 불량하다고 찍혀 선박전동기 공장에서 25년간 일하며 최하층 삶을 살았다.

/글·사진=김민식기자 callin-u@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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