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明燮
/한신대 교수·국제정치학

16대 대통령 선거 이후 한 쪽에서는 파워이동이 부산하고, 다른 쪽에서는 설익은 신주류선언이 요란하다. 한국의 보수는 왜 패배했는가? 세대교체·인터넷 열풍·내분·신지역주의·병역문제 등이 회자되고 있지만 미흡하다. 보다 큰 틀을 보자.

첫째, 밖을 보면 미국에도 책임이 있다. 냉전시대의 미국은 ‘초대받은 제국’이었다. 그러나 냉전 이후 유일 초강대국이 된 미국의 일방주의는 세계 곳곳에서 반미(反美) 정권의 출현을 부추겼다.

미국 중심적 세계화가 20대80의 구도를 빚어내면 낼수록 가진 것 없는 80은 뭉칠 수밖에 없다. 2002년 12월 한국의 대선에 앞서 9월에는 독일의 슈뢰더 총리가, 10월에는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이, 11월에는 터키의 이슬람계 정당이 집권할 수 있었던 배후에는 모두 미국의 일방주의에 대한 대중적 반감이 자리잡고 있었다. 권력은 총구나 금고가 아니라 대중의 표로부터 나온다는 것이 미국이 뿌린 자유민주주의의 원리가 아닌가.

냉전 이후 일본이 재(再)군사화를 통한 ‘정상국가’를 원하고 있다면, 냉전시대 미국의 전초기지적 성격을 지녔던 국가들에서는 탈(脫)군사화를 통한 ‘정상국가’에 대한 열망이 분출하고 있다. 근대화에 따른 도시화가 진행될수록 경제적 번영의 수호자였던 미군기지가 도시의 한복판에 자리잡게 되는 상황이 빈발하고 있다. 경제적 윤택함 속에서 자라나 문화도시를 꿈꾸는 젊은 세대들은 더 이상 이러한 안보적 특수상황을 수긍하지 않는다. 미국이 싫은 것이 아니라 군사기지가 싫은 것이다. 미국 내의 젊은이들도 그러하듯. 이제 한·미동맹의 새로운 옷이 필요한 것이다.

둘째, 안을 보면 민족을 위한 이정표가 없다. 세계화의 결과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민(民)을 “안 되면 이민 가지”라는 마음가짐으로 결코 리드할 수 없다. 반미 정권이 속출한 2002년 정작 반미적이라는 프랑스에서는 좌파가 결선투표에도 진출하지 못하는 사상 초유의 상황이 발생했다. 왜 그랬을까? 프랑스의 우파가 민족주의를 촌스럽다고 외면하지 않고 세계화 시대의 대안으로 새로운 민족주의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대한민국의 보수도 민족이라는 화두와 늘 함께 있었다. 모화사상에 맞서 독립문을 세울 때도 그랬고, 일제강점기 공산계열과의 대결과정에서도 그랬다. 미국을 통한 신문명의 힘을 빌려 중화의 비단자락에 덮여있던 민족의 정체성을 끄집어 내고, 역시 미국의 힘을 빌려 한민족 말살정책을 펴던 일본을 쫓아낼 때도 그랬다.

이승만과 김구가 반탁운동을 통해 갑자기 찬탁으로 돌아선 공산계열을 제압할 수 있었던 것도 민족이라는 화두를 움켜잡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박정희의 근대화도 민족중흥의 이념 속에 추진되었다. 경제적 우위를 기반으로 대한민국이 제시했던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처음으로 북한이 누리던 통일담론의 주도권에 쐐기를 박았고, 북한의 김일성 민족론은 민족담론에서의 수세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민족담론을 주도했던 한국의 보수가 민족을 포기하는 순간, 보수를 묶어줄 수 있는 거대이념이 사라지고 말았다. 이념이 없는 정당이란 월급을 줄 수 없는 기업과도 같은 것으로 여당이 되기도 어렵고 야당을 하기도 힘들다.

지금 거대한 항공모함이 방향을 틀고 있다. 물보라가 요란하고, 곳곳에서 일어나는 소용돌이는 작은 배들을 집어삼킬 듯 하다. 많은 선원들이 숨을 죽이고 새로운 수평선 위를 응시하고 있다. 오버랩되는 뮤지컬의 한 장면. 페론과 에비타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열광과 환호. 시가 연기와 함께 내뿜어지는 상류층의 경멸과 탄식.

에비타는 아르헨티나에 자신을 위해 울지말라고 했지만, 오늘날의 아르헨티나는 에비타를 기억할 여력이 없다. 그리고 경멸과 탄식을 뿜어내던 당시의 상류층은 또 어디에 있는가? 끝까지 책임지는 합리적 보수의 일대 각성이 요청되는 시점이다. 혈통·인종·신화에 기초한 민족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약속을 공유하는 민족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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