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배포하는 속기록에는 이따금씩 ‘―·―’로 표시된 부분이 등장할 때가 있다. 국회 발언 중 문제가 된 내용이 회의록에서 삭제됐을 때 사용하는 표기법이다.

지난 11월 14일 국회 본회의에서 ‘민주당은 북한 조선노동당의 2중대’라는 발언을 했던 한나라당 김용갑(김용갑) 의원의 대정부 질문 내용도 속기록에선 ‘―·―’ 투성이다. 당시 회의록엔 김 의원 발언뿐 아니라 이만섭(이만섭) 국회의장과 민주당 천정배(천정배) 수석부총무의 발언에도 ‘―·―’라는 표시가 등장한다. 어떤 부분을 삭제하라고 이야기할 때도 어쩔 수 없이 그 내용을 다시 언급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이런 일은 그저께(11월 29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서도 또 있었다. 박재규(박재규) 통일부 장관이 국군포로와 납북자 송환 문제를 북한에 정면으로 제기하지 않고 대신 ‘이산가족 문제’의 차원에서 다루겠다는 취지의 말을 한 데 대해 여야 의원들이 문제를 제기, ‘아예 못들은 걸로, 없었던 이야기로 하겠다’며 속기록에서 삭제토록 한 것이다.

하지만 국회가 ‘엄숙하게’ 삭제한 부분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비밀’로 남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기 때문이다.

미국도 연방하원 규칙에 속기록 삭제 규정을 두고 있으나 ‘비(비)의회적인 언어’를 사용한 경우에 적용할 뿐 ‘정치 공세’로 사용되는 예는 거의 없다. 우리는 국회법이나 관련 규정 어디에도 ‘속기록 삭제’가 명시돼 있지 않으면서도 관행적으로 삭제가 요구되고 관철돼 왔다.

언론을 통해 세상에 다 알려지는 내용을 국회의 공식 기록인 속기록에선 지워버린다는 것, 그것도 흔히 당파적 이해(리해)에 따라 감정적으로 요구되고 결정되는 이런 관행이 과연 언제까지 존속돼야 할지 의문이다. /박두식 정치부기자 dspark@chosun.com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