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적십자사 장충식(장충식) 총재의 29일 돌연한 출국은 여러 의문점을 남기고 있다.

우선 27일 통일부 공보관의 공식 브리핑은 물론, 29일 박기륜(박기륜) 사무총장의 확인을 통해서도 장 총재의 ‘30일 만찬 주재’는 부동의 사실인 것처럼 보였다. 장 총재가 출국 공항에서 “원래 예정했던 출국”이라고 밝힌 것은 사실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

제2차 이산가족 교환방문이 하루 앞으로 다가오면서 정부측의 이상스러운 움직임이 감지되기 시작한 것은 29일 오전. 북측이 27일 비공식 채널을 통해 장 총재 주최 만찬을 거부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 알려지면서 장 총재의 ‘행방’은 갑자기 비밀이 됐다. 장 총재의 한 측근은 오전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허리가 불편해 병원에 가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내일 만찬을 주최하지 못할 것 같다”고 전했다. 한적 관계자도 “작년에도 허리 병으로 입원하신 적이 있다”며 “연세도 있고 하니 그럴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연막을 쳤다.

이 시각 한적 총재실 주변은 부산하게 움직였다. 한 관계자는 외부와의 전화를 통해 장 총재의 일정과 안내를 맡을 사람을 구하는 문제를 협의하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북측의 요구가 있은 뒤 서둘러 일본 방문 일정을 마련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은 이래서 남는다.

뒤늦은 한적의 설명도 군색하기 짝이 없다. 장 총재의 일본 방문 목적이라는 ‘사할린 동포의 영주 귀국 문제’ 협의는 하필 북측 이산가족이 서울을 방문하는 이 시점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일정을 조정할 수 있는 일이란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이산가족 교환방문을 주관하는 기관인 한적의 최고 책임자가 자리를 비운다는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측이 지난주 장 총재의 만찬 주최 여부를 놓고 대책회의를 가졌으나 협의 내용에 대해 관련기관 모두 쉬쉬해왔던 사실도 ‘뒤늦은 기획(기획) 출국’의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이 때문에 장 총재의 출국을 둘러싸고 다시 정부의 대북 ‘저자세’ 논란이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미 장 총재의 월간조선 인터뷰와 관련, 장 총재가 직접 쓰지도 않은 대북 유감 서한을 이달초 비밀리에 북한에 전달했다가 뒤늦게 사실이 드러나 곤욕을 치르기도 했기 때문이다.

/최병묵기자 bmchoi@chosun.com

/윤정호기자 jhyo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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