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 3국의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TCOG) 회의에서 미국이 극히 제한적 성격이긴 하지만 북한과의 대화용의를 표명함으로써 꽉 막혀 있던 북한핵(核) 위기 국면에 작지만 의미있는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미국은 그동안 북한이 조건 없이 핵무기 개발프로그램을 확실한 방법으로 포기한 후라야 대화에 응할 수 있다는 입장을 지켜왔으나, 이번에 “북한이 국제사회에 한 약속을 어떻게 준수할 것인지에 관해 대화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북한이 핵개발 포기에 앞서 ‘포기 의사’를 분명하게 천명하면, 그 구체적 방법에 관해서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것을 미국의 입장 변화라고 보기는 어렵다. TCOG 성명은 북한의 ‘즉각적이고 완전한 핵무기 개발계획의 폐기’를 강력히 촉구하면서, 이를 위해 ‘보상이나 대가’를 제공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북한핵이 협상의 대상이 아님을 거듭 밝히면서 북한의 ‘선(先) 핵 폐기’ 원칙을 재확인한 것이다.

그러나 심각한 문제일수록 그 해결의 실마리는 극히 미세한 데서부터 풀려나갈 수 있다. 미국이 어떤 명분으로든 대화 용의를 밝힌 만큼 이제 북한이 이 작은 계기를 긍정적으로 키워나갈 차례다. 부시 미국 대통령이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의지를 되풀이해서 강조하고 있는 최근의 분위기도 북한이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북한으로서는 미국이 제시한 대화의 전제조건과 의제가 당장 욕심에 차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자신의 ‘나쁜 행동’으로 대가를 요구하는 식의 모험주의가 더이상 먹혀들지 않게 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미국의 대화 용의 표명을 북핵 저지 의지가 느슨해진 조짐으로 잘못 읽어서도 안 된다.

북한의 진정한 목적이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기어이 핵무기를 보유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반대급부를 노린 협상에 있다면, 이제 북한은 핵시설에 대한 봉인장치의 원상회복 순서를 밟는 등 위기의 완화과정을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대화를 여는 첫걸음이고, 협상으로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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