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황장엽(황장엽)씨가 ‘정부의 대북 정책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국정원이 자신의 활동을 제한하고 있다고 불평한데 대해, 국정원은 “황씨의 언동이 그를 보호하는 차원에서나 남북 화해·협력 관계 진전에 있어서도 도움이 안된다고 보고 자중해 줄 것을 권장했다”고 말했다.

황장엽씨에 관한 상세한 내용을 알 수 없는 필자로서는 황씨가 제기한 문제에 대해 뭐라고 판단을 내리기가 어렵다. 다만 황장엽씨의 경우와는 별도로, 과연 우리는 남북 화해·협력을 위해 북한에 대한 비판을 자제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아야 할 줄 안다.

국정원은 황장엽씨에 대한 입장을 밝힌 것이지, 우리가 모두 자중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여기에서 국정원의 입장을 비판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최근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흐름을 보았을 때, 남북화해와 협력을 위해서는 북한에 대한 비판은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대전제가 작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와 같은 태도는 우리나라 언론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북한이 그렇게 요구하기도 했지만, 우리의 언론·정부 쪽에서도 남북화해를 위해 북한에 대한 비판이나 부정적인 보도는 자제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 결과로 그동안 북한을 다녀온 언론인들이 많았지만 북한사회의 실상에 대한 보도는 하나도 없었다. 미국 국무장관을 동행했던 미국 기자들이 북한사회의 현실에 대해 보도했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물론 북한과 직접 협상해야 하는 정부의 입장은 이해할 수 있다. 정부가 추구하는 목표는 북한상황의 실질적 개선이지 북한체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것이 목적은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정부에 있지도 않는 민간 지식인의 경우에도 정부와 마찬가지의 논리로 대북 비판을 자제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북한체제에 대해 근본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경우는 또 다르다. 진정으로 북한에 인권탄압이 없고 세습독재가 문제가 되지 않으며 개인의 자유와 존엄이 건재하다고 믿는다면, 그런 사람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대북 침묵의 문제와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를 제기한다.

그렇지 않고 북한체제에 문제가 있고, 그 문제는 인간의 기본권과 개인의 존엄성을 부정하는데 있으며, 이런 기본적인 문제가 우리의 통일을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남북화해와 협력을 위해 스스로 침묵을 지키는 지식인의 자세는 옳은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다.

우선 무엇보다도 우리는 침묵하는 지식인의 고뇌와 선택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큰 목소리로 북한을 비판하는 자만이 자유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동시에 대북 침묵 논리의 모순은 분명히 밝혀둘 필요가 있다.

문제는 우리가 북한체제에 대해 침묵하면 북한이 남북관계 개선에 동의할 확률이 많아지고 북한체제를 비판하면 남북관계가 악화된다는 증거는 없다는 데 있다. 오히려 북한체제에 대한 비판과 압력이 커지면 커질수록 북한은 전술적으로나마 변화를 보여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북의 대남 정책은 남한의 민간 지식인들의 발언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이익과 필요성에 따라 결정된다고 보아야 한다.

지식인은 진실을 말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어떤 특정한 결과를 유도하기 위해 입증되지도 않은 논리에 따라 침묵을 지키다 보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진실은 침묵 속에 묻혀 버리고 허위만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불행한 사태가 오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사회과학원 원장·고려대 국제대학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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