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의 겨레가 손잡고 통일과 평화의 땅을 만들어 갔으면 합니다. 경제적 어려움이 커 우선은 빵이겠지만 어려울수록 생명에 대한 존엄과 사람의 근본을 깨달아야 하지요. ”

지난 73년 천주교 광주대교구장을 맡아 27년동안 사회정의와 가난한 이들의 삶에 각별한 애정을 쏟아온 윤공희(윤공희·76·빅토리노) 대주교는 27일 퇴임회견을 통해 “늘 바라만 보아온 무등산 정상에 최근 처음 올라 광주시내를 보며 하느님이 모세에게 말한 ‘약속의 땅’은 어디일까 생각해 보았다”며 “광주항쟁 같은 역사적 비극을 되풀이 하지 않고, 미래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서는 과거에서 교훈을 얻고 역사의 진실과 정의를 바로 세워야한다”고 말했다.

사회에 대한 메시지도 전했다. “우리 사회는 개인·집단 이기주의가 너무 심화되는 것 같습니다. 민족의 발전 없이는 개인의 완성은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국민 모두에게 민족과 겨레를 사랑하는 마음을 키워주실 것을 당부드립니다. 애국심과 공동선을 실현하겠다는 책임감을 가져줄 것을 정치인들에게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

평남 진남포가 고향인 그는 “북한에 누이와 조카들이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했다”며 “누이와 꼭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통일로 가는 길에 있어 종교의 역할은 크다”며 “현 상황에서는 남북이 여러 통로를 통해 자주 만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가 다니던 덕원신학교가 지난 49년 공산당에 의해 폐쇄되자 이듬 해 서울로 내려와 서울 혜화동 신학교에서 사제로 서품됐다.

이탈리아 그레고리안 대학에서 교의신학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 63년 초대 수원교구장을 맡아 같은 해 주교 서품을 받았고, 73년부터 광주대교구장으로 재직해왔다. 1970년대 유신말기부터 5·6공에 이르는 암울한 시기에 ‘진실과 정의’로 민주화의 새바람을 몰고 왔다. 김수환 추기경은 “정의를 추구하고, 그리스도의 평화를 전하는 참된 사제의 길을 살아오신 분”이라고 평한 바 있다.

윤 대주교는 오는 30일 오후 2시 광주 임동대성당에서 후임 최창무(64) 대주교에게 자리를 물려준다.

/광주=권경안기자 gakw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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