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玄浩
/논설위원 겸 통한문제연구소장 hhkim@chosun.com

이번 16대 대통령 선거 결과는 김대중 대통령에게 여러모로 다행스럽게 받아들여졌겠지만, 특히 자신의 대북정책이 단명(短命)으로 끝나지 않고 차기 정부로 이어지게 됐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큰 위안이 됐을 것이다. 남북문제야말로 김 대통령 스스로 필생의 과업으로 삼아왔고 노벨평화상까지 안겨준 만큼 자신의 대북정책 철학과 원칙이 생명력을 유지해 역사 속에서 평가받기를 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김 대통령이 진실로 자신의 대북정책이 차기 정부로 온전히 이어져 역사적 성과를 거두기를 원한다면, 이 시점에서 햇볕정책이 안고 있었던 근본적인 한계와 추진방식의 문제점, 그리고 대북 관계에 얽힌 갖가지 의혹의 진실을 소상히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에게 설명하고 교훈을 얻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대북정책에서 쌓은 좋은 자산(資産)들은 그대로 물려주되 부(否)의 유산은 남은 현 정부 임기 중에라도 최대한 청산해서 차기 정부가 조금이라도 나은 여건에서 출발할 수 있도록 정지(整地)작업을 해 주어야 한다.

남북관계에서 김 대통령의 업적으로 간주되는 곳에 역설적이게도 차기 정부가 직면할 난관의 벽도 높아 보인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의 결과물인 6·15공동선언만 해도 그 역사적 의미와는 별개로 차기 정부에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할 조짐이 이미 나타나고 있다.

북한이 올해 신년사에서 ‘반미(反美) 민족공조’를 특히 강조하고 나온 데에는 “나라의 통일문제를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천명한 6·15 공동선언 제 1항이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은 정상회담 직후부터 이 조항을 금과옥조로 삼아 우리 측에 ‘민족공조’와 ‘외세공조’ 중 택일하라고 강요해 왔다.

현 정부는 결자해지(結者解之) 차원에서 6·15 공동선언과 북한이 주장하는 민족공조론의 상관관계를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이를 정리하고 넘어가지 않으면 차기 정부는 초반부터 핵문제 등에서 북한의 공세에 시달리면서 운신의 폭을 제약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남쪽의 서명 당사자가 퇴임하고 난 후 이 조항의 해석을 북쪽이 자의적으로 하고 나설 경우 차기 정부가 곤혹스런 입장에 빠질 수도 있다.

공동선언 제 2항의 연합제와 연방제 논란도 말끔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다. 북한은 이를 “남북이 연방제 통일에 합의한 것”이라는 주장을 철회하지 않고 있다. 이 부분 역시 언젠가는 남북관계에 장애물로 등장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남북정상회담에 얽힌 의혹들은 한둘이 아니다. 4000억원 제공설은 일부에 불과하다. 남북정상간에 통일논의는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주한미군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모두가 안개속이다. 정상회담 회의록 등은 통상 규정대로라면 남북회담 사무국에 보존돼 있어야 하지만, 그곳에는 없다고 한다. 자세한 기록이 존재하는지조차 알 수가 없다.

남북관계의 은밀하고 예민한 부분들에 대한 인수 인계작업이 현 정부와 정권인수위 간의 공식적인 업무차원에서 제대로 이루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것은 공식적인 기록보다는 대부분 김 대통령 개인의 기억과 느낌, 또는 비밀 메모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걸 김 대통령은 어떤 방식으로든 가감없이 노 당선자측에 넘겨 주어야 한다.

이런 일은 김 대통령이 퇴임과 동시에 국내정치에서만 아니라 대북문제에서도 모든 욕심을 버리겠다는 마음을 가질 때만이 가능할 것이다. 만에 하나 김 대통령이 대북 정보와 인맥의 일정 부분을 확보해 두었다가 퇴임 후에도 ‘상왕(上王)적’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생각을 갖는다면 대북정책의 혼선이 불가피해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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