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국제학대학원과 미국 조지 워싱턴대 엘리엇스쿨(행정대학원) 공동주최로 지난 3~4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일 3국 공동 대북정책 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은 북한의 태도변화가 없다면 향후 미국의 대북정책은 ‘포용’정책에서 강경노선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은 ‘일방적 온건노선’이며 보다 신축적인 정책대응이 필요하다는 비판론도 제기됐다. /편집자





◆한·미·일 3국의 국내정치와 대북정책

모종린(모종린·연세대 교수)=개입(engagement)을 기조로 하는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은 국민의 지지를 받았지만 최근 여론조사 결과는 무조건 지지는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햇볕정책 실시 이후에도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포기, 핵문제 투명성 제고, 1991년의 남북기본합의서 준수 여부 등은 불명확하다. 4월 총선을 맞아 야당 등은 경제교류나 원조가 북한 군사력을 증강시키고 국민들의 안보정신을 희석시킬 뿐이며, 대북정책의 주도권을 미·중·일에 빼앗기고, 탈북자들의 인권 문제에 대해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북한의 태도나 행태는 여전히 불확실하며, 이는 대북정책에 혼선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이런 정책의 혼선을 막고 일관되고 효율적인 대북정책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국내 여론의 컨센서스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오코노기 마사오(일본 게이오대 교수)=일본의 대북정책은 수년간 대화와 도발 억지(억지) 사이를 오가고 있다.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발사 이후 억지노선이 힘을 얻고 있다. 미·북간 베를린합의와 페리보고서 이후에는 일본은 북한과 국교정상화를 추진중이다. 미국의 대선도 대북 대화노선 강화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미북 관계 개선으로 당장은 한반도 정세가 완화될 수 있으나, 북한은 교섭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는 비장의 수단인 미사일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안보위협과 납치사건으로 일본의 국내여론은 악화해 있고, 대선을 앞둔 미국은 포용정책을 펴는 데 한계가 있다. 북한은 태도변화가 없다면 미국과 일본의 경제원조나 안보보장을 얻어낼 수 없다.

래리 닉쉬(미 의회입법연구관)=미국의 대북정책이 갖는 문제점은 미·북간 핵 합의가 없었더라면 북한이 많은 핵무기를 생산, 이란 등에 수출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행정부가 비판세력을 압도하고 있는 점이다. 비판세력들은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행정부에 결정적인 타격도 주지 못하고 있다. 1998년, 1999년 금창리에 대한 조사에서도 결정적 단서는 발견되지 않았고 의회는 행정부에 일격을 가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또 대량살상 무기에 관심을 국한함으로써 북한의 테러, 인권, 경제정책, 원조물자 유용 등에 대한 비판세력들의 비판 영역이 제한됐다. 의회의 비판세력과 행정부는 북한이 재래식 전쟁을 수행할 능력이 없다는 현실을 인식해야 하고, 북한이 대량살상 무기를 외교적 목적으로, 또 미국으로부터의 공격에 대한 억지력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북한의 현 상황

노리유키 스즈키(일본 라디오프레스 국장)=무엇보다 북한은 유연성을 갖추기 시작했다. 또 김정일은 김일성의 유산으로부터 벗어나 독자적인 정책과 권력을 형성하고 있다. 작년 12월 미·북 베를린합의 이후, 북한은 미국에 1994년 제네바 합의에 명시된 양자관계의 진전과 구체화를 촉구하고 있다. 이는 미국 대선에서 북한에 비우호적인 공화당의 집권을 우려하기 때문이며 클린턴 집권기간 내에 양자관계를 진전시키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북한은 이 밖에 중국과의 관계 회복, 러시아와의 우호조약 체결, 이탈리아, 호주, 필리핀, 캐나다와의 외교관계 수립 등 외교적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 김정일은 또 노동당 총비서와 군사위원회 위원장에 오름으로써 ‘카리스마’가 아닌 ‘기구’를 통해 국가를 지배하려 하고 있다. 경제에 있어서는 더욱 확고한 통제 의지를 나타냈다.

이정민(이정민·연세대 교수)=재래전 발발 가능성은 현저히 떨어졌지만, 북한의 핵과 생화학 무기, 미사일 위협으로 북한이 군사적 공격을 감행할지 여부에 대한 판단은 어렵다. 북한을 개혁과 개방으로 이끄는 데 있어 햇볕정책의 성과는 아직 불확실하다. 뚜렷한 대안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한·미·일 3국은 이러한 포용전략을 수용하고 있다. 앞으로 북한 내부의 변화에 의해 한반도의 안정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북한 내에서는 정권 침몰 가능성이 증가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 대비해 한국은 위기 관리능력 확보와 대응책 마련 등의 노력을 해야 한다. 문제는 바로 이러한 준비태세가 햇볕정책과 잘 맞지 않는다는 데 있다.

오공단(브루킹스연구소 객원연구원)=북한정권은 사회경제적 위기에도 상당 기간 그럭저럭 헤쳐나갈(muddling through) 것으로 본다. 엘리트집단은 경제 자유화로 인해 군중에 대한 통제력을 잃을 것을 우려하고 있어, 중국의 경제개혁과 같은 개혁은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다. 김정일은 주체사상의 선전을 강화하고 군부로 하여금 주민통제와 외교정책을 수행하도록 함으로써 난국을 헤쳐가고 있다. 현재 한·미·일 3국 정부는 오히려 김정일 정권이 상당 기간 권력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하고 대북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 사회가 장기적으로도 안정적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북한의 붕괴 가능성에 대비한 통일준비가 시급하다.

데이비드 셤버그(조지 워싱턴대 교수)=중국 정부는 북한의 정치, 경제, 사회가 어렵지 않다고 보고 있지만, 중국식 개방, 개혁 모델을 선택하기를 원하고 있다. 중국은 북한 내부의 혼란이 자신들의 국경지역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위기 상황에서는 국경을 봉쇄할 계획을 갖고 있다. 한반도에서의 미국의 영향력을 견제하는 것이 중국의 두 번째 목표이다. 중국은 또한 현재의 한·미·일 공조체제가 사실상의 3자 군사동맹으로 발전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통일 한국이 분단 한국보다 더 불안하다는 것이 중국의 평가이다.

◆향후 대북정책 방향

시게무라 도시미츠(일본 마이니치신문 논설위원)=일본 행정부의 대북정책에는 정치가와 미국의 영향력이 강하게 작용한다. 북한의 시계추(pendulum)전략, 북한 내부의 외교부와 정보부간 외교주도권 갈등, 일본인 납치사건 등도 일본 행정부의 외교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다. 일본은 외교관료의 순환근무제도로 북한관련 전문가가 없다. 북한과 일본간 국교정상화협상이 정치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일본의 외무성과 북한 외무부간의 공식적 외교채널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정훈(연세대 교수)=페리보고서 이후 북한에 대한 정책 협조를 위해 작년 5월 제도화된 ‘3국 협력그룹(TCOG:Trilateral Coordination and Oversight Group)’이 냉전구도를 제거하고 한반도에 영구적 평화상태를 가져오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그럼에도 미국은 한반도 내 안정을 위해 최상의 존재다. 미국의 역할이 극대화하기 위해서 일본과의 강력한 연대를 고려해야 하며 중국, 북한 과의 협력도 함께 추구해야 한다. 물론 중국은 외교채널로서 뿐 아니라 북한에 대한 중요한 견제수단으로 중요하다. /정리=최원석기자 yuwhan29@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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