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선 지난 한해 동안 한국전을 다룬 책이 많이 출판됐다. ‘맥아더의 전쟁’(MacArthur’s War: Korea and the Undoing of An American Hero)을 쓴 웨인트로브(Stanley Weintraub) 교수는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 교수로 주로 20세기 전쟁사를 연구했는데 그 자신도 한국전에 초급장교로 참전한 바 있다.

이 책은 1950년 6월 북한군 남침부터 맥아더가 유엔군 사령관직에서 해임된 1951년 4월까지 우리나라 운명을 좌우했던 10개월간을 다루고 있다. 전쟁사학자가 쓴 전문서적이지만 한편으론 논픽션을 읽는 것 같은 생동감을 느낄 수 있는데, 그것은 저자가 한국전 참전용사이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한국전의 첫 한해가 사실상 ‘맥아더의 전쟁’이었다고 술회한다.

저자는 주로 맥아더의 카리스마와 그 한계점, 그리고 그것이 한국전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고 있다. 한국전쟁 중 맥아더의 가장 탁월한 작전은 인천상륙 작전이었다. 그의 가장 큰 실책은 중국의 참전 가능성을 예견하지 못한 것이다. 맥아더는 그의 독특한 성격 때문에 워싱턴의 합참본부와 필요 이상으로 긴장관계를 조성했다. 자기 주변의 보좌관들을 통해서만 정보를 들었기 때문에 정세판단에 문제가 있었고, 이로 인해 병사들을 불필요한 위험 속에 빠뜨렸다. 공산주의의 뿌리를 차제에 제거해야 한다는 등 마치 제3차 세계대전을 촉발시키려는 듯한 언동을 자주 했다. 그래서 저자는 트루먼 대통령이 맥아더를 파면한 것은 정당한 조치로 본다.

한국전쟁을 이끈 미군 지휘관들의 진면목도 볼 수 있다. 저돌적 성격으로 유명한 워커 장군은 8군 사령관으로 전쟁 초기에 낙동강 전선을 지켰다. 그는 나중에 서부 전선을 지휘했는데 중공군 개입 후 의정부에서 후퇴 중이던 한국군 트럭이 그의 지프를 들이 받는 사고로 사망했다. 2차 대전시 패튼 장군의 전차군단의 사단장으로 독일전선을 누볐던 워커 장군은 평소의 스타일은 물론이고 비극적인 최후마저 그가 존경했던 패튼 장군과 너무나 닮았다.

맥아더가 총애한 알몬드 장군은 10군단을 지휘했는데, 10군단 예하의 미 해병대는 50년 11월 말 장진호 부근에서 중공군에 포위돼 버렸다. 지옥과 같은 추위 속에서 미 해병 1사단은 중공군의 포위망을 돌파했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장진호 전투로서 미국 해병대 역사상 가장 치열한 전투의 하나로 기록돼 있다. 이 참혹한 전투에서 미군이 치른 희생도 대단했는데 이도 역시 도쿄에 위치한 맥아더 사령부가 정보에 어두웠기 때문이었다. 맥아더의 후임으로 임명된 리지웨이 장군이 한국에 부임하자 마자 야전지휘관을 대폭 교체한 것도 당시 사정이 어떠했나를 잘 보여 준다.

이 책의 여러 곳에서 당시의 한국군에 대한 미군 지휘관들의 시각을 볼 수 있다. 개전 초기에 한국 해군의 PC 701함이 북한 병력수송선을 울산 근해에서 격침시켜 부산을 지킨 것은 혁혁한 전과로 평가된다. 그러나 한국군은 작전에 무능할 뿐더러 부패가 만연해 있었다는 것이 주요 미군 지휘관의 시각이었다. 리지웨이 장군은 규율도 없이 무턱대고 후퇴하는 한국군을 보고 기가 막혔다고 자신의 회고록에서 술회했다. 또한 당시 전선이 혼란했기 때문에 유엔군의 포화로 인해 아군 병사와 민간인이 희생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남북화해 무드 속에서 잊혀져 가고 있는 한국전을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이상돈·중앙대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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