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여자의 이름에서 춘자 숙자 하는 ‘자’자가 사라지고 꽃니·봄이·새벽이·난이·성미 하는 ‘이’자 선호가 두드러지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따지고 보면 이름자 말미의 ‘이’자 선호는 한국 여자이름의 원점회귀(원점회귀)랄 수 있다. 신라시대의 미륵보살이나 여래상을 조성해서 바친 이의 여자이름 새겨진 것을 보면 관초리·고파리·고호리·아호리·고보리 등 ‘이’자 항렬이 대부분이다. 한말 호적 정리 때 어릴 적 부르던 아명을 그대로 호적에 올린 경우가 많은데 동구리·도토리·거구리·속구리·간난이·오목이·언년이·점분이 등 여자이름은 ‘이’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남존사상이 뿌리내리면서 아명으로 불리던 여자이름은 출가와 동시에 그마저 증발, 김씨댁 박씨댁 하는 종속호칭이나 광주댁 진주댁 하는 친정지명으로 불리우고, 박소사(박소사) 김소사(김소사)―또는 아지(아지) 아씨(아씨)하는 통칭으로 불리었을 따름이다.

본래 이름자에 쓰는 ‘자’는 존칭이나 경칭이었다. 공구(공구)를 공자(공자)로, 한비(한비)를 한비자(한비자)로 부른 데서 알 수 있다. 송나라 무공(무공)에게 중자(중자)라는 딸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존귀한 여자라는 존칭이라 한다. 이 중국 작명풍습을 평안조(평안조) 때 일본이 도입해 귀족 여자이름으로 쓰였고, 1890년대에 인권의식이 싹트면서 서민들도 앞다투어 ‘자’자 선호를 했으며, 1930년대에는 일본 여자이름의 85%가 ‘자’자 돌림이었다. 우리나라 호적 초창기에 기자(기자) 필자(필자) 같은 아들 낳길 바라는 ‘자’자 돌림 이름이 없지는 않았으나 일본 침략시대의 강요로 여자 이름에 ‘자’가 범람했던 것이다.

지금은 탈 한자의 예쁜 우리말 이름들이 많은데, 끝돌림을 가·나·다·라 하는 열린 소리와 이·리·미·지 하는 가는 소리, 수·우·루·유 하는 깊은 소리로 가려볼 수 있다. 이는 여성을 둔 사회심리를 반영하는 것으로, 끝돌림의 열린 소리는 그 사회가 개방적이고 활달한 여성 이미지를 지향하고 있음이요, 가는 소리는 갸름하고 여자다운 이미지 지향이며, 깊은 소리는 차분하고 침착한 이미지 지향이라 한다. 이 말이 맞다면 ‘이’자 이름을 선호하는 북한 여성 이미지 성향을 가늠해 봄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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