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熙相

지난 2년간 미국 RAND, 일본 방위연구소, 러시아 IMEMO, 중국 사회과학연구소 등 주변 4국의 대표적 안보 연구소를 두루 섭렵할 기회를 가졌다. 대체로 21세기 동북아가 미국·중국, 일본·중국 간의 태생적 갈등관계를 중심으로 매우 불안정할 가능성이 높다는 데 큰 이견이 없었다.

그 지정학적 중심에 화약고인 한반도가 서있고 북한은 변함없이 그 뇌관이 되려 하고 있다. 최근 북한의 개혁적 상황도 전쟁지도체제라고나 해야 할 북한의 체제와 통치그룹의 전근대적 사고방식 등에 비추어 오히려 태풍 전야의 성격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한국은 장차 이런 속에서 안전을 지키고 보다 의미 있는 삶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 다행히 우리가 지혜롭게 적응하면 미국 부시 행정부의 독특한 의식구조와 정책, 점진적이지만 분명한 중국의 변화를 비롯한 국제 안보환경, 한국사회의 폭발하는 민족적 자긍심과 젊은 리더십 등으로 지금이 오히려 기회의 시대일 수도 있다.

새 지도자에 대한 기대가 무겁지 않을 수가 없다. 전에 없이 불안정해 보이는 안보태세를 재정비하고 국민을 안심시키는 일은 그 으뜸이다. 전투는 군인의 일이지만 전쟁은 국민의 몫이고 국가안보 역량의 핵심은 국민의 안보적 일체감과 안보 의지다. 온 국민이 자유 민주주의 체제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하고 조국의 안보에 동참하도록 서둘러 독려해야 할 때이다.

그동안 한국안보의 결정적 억제력의 하나는 ‘한·미 안보협력체제’였다. 그러나 지금 주한미군은 너 나 할 것 없이 반미(反美)의 격랑과 테러의 위협 속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한국의 반미가 염한(厭韓), 혐한(嫌韓) 정서로 대치될 것이고 ‘테러’는 그 자체가 국가안보 문제다. ‘한·미 우호’가 허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미국과의 우호’는 러시아와 중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의 공통된 외교적 이슈다.

안보와 경제 할 것 없이 미국이 주도하는 신국제질서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현실이다. 한국에 있어서의 한·미 관계는 생존과 통일 어느 측면으로 보든 대외정책의 대들보다. 한국은 그 위에 ‘연미(聯美), 친러(親露), 득중(得中), 우일(友日)’의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이 세계화 시대에 과도하게 배타적인 민족주의는 자칫 고립을 자초하는 자해(自害) 행위가 될 수 있다. 좀더 냉철하고 이성적이어야 할 때다.

국방 역량과 태세도 다시 살펴볼 때가 되었다. 무릇 도발의 억제와 평화의 유지는, 회피하고 구걸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응징의 역량과 보복의 의지로 지켜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에 대한 태도가, 확고한 원칙을 전제로 한결 의연하고 투명해야 함도 같은 이유다.

그것이 북한의 오판을 막고 우리 국민을 안심시키는 길이기도 하다. 어쨌건 적절한 군사력의 뒷받침이 없으면 억제도 불가능하다. 설사 평화가 유지되어도 굴욕적이거나 불안정한 것일 수밖에 없다. 통일도 어려워진다.

통일은 군사적 통합으로 비로소 매듭지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민족적 선의(善意)를 모욕적 협박으로 되돌려준 북한의 핵 문제는 이래저래 반드시 해결되어야 한다.

이렇게 새 지도자가 직면하고 있는 안보상의 과제는 과거의 그것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이제 기존의 소극적 안보정책은 그 기조부터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한반도의 통일 문제는 평화와 번영, 그리고 민족적 가치의 고양 등 모든 측면에서 한민족의 새로운 시작의 출발점이요, 동북아 안정의 기반이라는 적극적 인식도 중요하다.

대미 관계도 일방적 의존보다는 자주적 협력체제로 전환되어야 하고 햇볕과 포용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거기에는 안보역량 강화와의 균형이 있어야 한다.

어떻게 하건 한없는 불안 속에 지속되어 온 국가적 모욕과 민족적 고통의 시대는 한시바삐 끝을 내야 한다. 지금이 바로 그 시기다.//중국 사회과학연구소 고문·전 국방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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