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미국에 대한 북한의 일반적인 인식은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철천지 원쑤”, “흉악한 제국주의 우두머리”였다. 그러나 이런 표현에도 시대와 상황에 따라 약간씩 어감의 차이가 느껴진다.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사가 발간하는 ‘조선중앙년감’은 대내문제와 함께 세계 각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분야별 변화상을 소개하고 있는데 북한당국의 공식 입장과 견해를 대변한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시사점을 제공해주고 있다.

이와 관련해 눈에 띄는 것은 1973년판이다. 연감은 미국의 인구를 소개하면서 “(미국)주민의 90%는 구라파에서 옮겨온 식인종들의 후손”이라고 적고 있다. 바로 한 해 전인 72년까지 “아메리카 인디안(75만명), 흑인(3천만명), 영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에서 이주해온 사람들과 그 후손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기술했던 것을 왜 이렇게 과격하게 바꾸었는지 이유는 알 수가 없지만 이듬해부터 다시 이 표현은 사라졌다.

미국의 ‘정치’에 대해서는 “해적의 무리들이 원주민인 아메리카인디안을 대량 살육하는 피바다 속에서 1784년에 아메리카합중국이 생겨났다”(1969년)는 설명으로 시작해 주로 “제국주의 침략성”을 부각시키는 데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1973년부터는 “미제는 조선인민의 철천지 원쑤이며 전세계인민들의 가장 흉악한 원쑤”라는 설명이 등장하는데 1980년대에 들어서 이런 원색적인 표현은 사라진다. 1990년대 들어 눈길을 끄는 것은 알래스카 편입에 대한 설명. 1867년 러시아로부터 빼앗아 냈다(1995년)고 했다가 720만달러에 샀다(1996년)고 수정했다.

사회문화에 대한 설명은 좀더 자극적이다. “미국은 전형적인 부익부·빈익빈의 사회이며 온갖 범죄와 패륜패덕이 집결된 개같은 세상”(1974년)이라는 것이 그 요지.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표현이 다소 완화되고 있지만 사회저변의 부정적이고 어두운 측면을 들춰내 보인다는 점에서 크게 달라진 점은 없어 보인다.

앞으로 미북관계가 진전됨에 따라 연감의 표현이 어떻게 달라질지 관심이다.

/김광인기자 kk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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