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철만 되면 온 동네가 배추바다로 변한다. 배추를 소금에 절이고 씻고 양념을 무치느라 온 가족이 총동원된다. 김장철이면 가정 주부들에게는 3일간의 휴가를 별도로 준다. 남자들에게도 노력동원을 거의 없애고 집에 가서 돕도록 배려한다. 그야말로 온 가족이 달라붙는 김장전투가 되는 것이다.
도시나 노동자구에서는 공장, 기업소별로 각 협동농장의 배추, 무 밭이 미리 배정된다. 각 기업소들은 자기들이 먹을 배추, 무의 수확량을 높이기 위해 비료 등을 별도로 구입해 뿌리는가 하면 아예 노동자가 나가 직접 관리하기도 한다. 그리고 수확철이 다가 오면 농장원을 믿지 못해 기업소 노동자가 경비를 서기도 한다.
김장철이면 포전마다 저울을 가져다 놓고 밭에서 직접 배추와 무를 개인에게 분배한다. 배추의 경우 어른 1인당 70~80kg, 무는 15~25kg 정도를 배급받는데 무가 배추보다 귀해 모자라는 경우가 많다. 개별적으로 뙈기밭에서 기른 배추까지 합치면 1인당 약 100kg 정도의 김장을 하게 된다. 4~5인 가족이면 최소한 300포기 이상이다. 대가족으로 1톤 이상의 김장을 담는 집도 드물지 않다.
김장 배추의 수송을 위해서는 군 단위에서 보유하고 있는 비상용 기름까지 사용되며, 자동차와 트랙터는 물론 소달구지, 지게 등 모든 운송수단이 총동원된다. 운반작업은 밤을 새며 진행된다. 캄캄한 밤에 횃불을 켜고 배추, 무를 지키는 사람들도 흔히 볼 수 있다. 과거 식량난이 심각해지기 전에는 밭에 떨어진 배추잎이 드문드문 보였지만 지금은 찾아 보기 어렵다.
김칫독은 보통 웬만한 아이의 키를 넘을 정도로 크다. 이런 김칫독을 한집에 2~3개씩 장만하며, 이사 갈 때 가장 신경쓸 만큼 애지중지 한다. 고춧가루와 양념은 각자 해결한다. 김장철이 되면 고추 값과 마늘 값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장사꾼들은 양념감을 비축해 놓았다가 김장철에 값을 올려 한몫 잡으려 한다. 어떤 양념을 얼마나 썼는지 김치색깔만 봐도 그 집의 경제형편을 알 수 있다. 아무리 생활이 어려워도 김치만은 제대로 담그려고 하지만 여의치 않을 경우 백김치를 담근다. 명태가 흔히 쓰는 양념감이고, 까나리 새우젓 등도 많이 쓰이며, 고급으로는 문어를 쓴다.
김치 담그기가 끝나면 가정주부들은 며칠씩 앓아 눕는다. 그리고는 김치가 맛이 들 무렵이면 자기집 김치를 옆집에 나누어 주면서 다른 집의 김치 맛을 본다.
그러면서 이웃간의 정을 확인한다. 그러나 식량난이 악화된 최근에는 김치도둑도 극성이다. 단속을 잘 못했다가는 반년 식량을 잃을 수도 있다. 김치움막을 만들어 자물쇠까지 채우지만 독째 사라지는 일도 적지 않다. /강철환기자 nkch@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