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海賊)에 낭만적 이미지를 심어준 것은 뭐니뭐니 해도 로버트 스티븐슨의 명작 ‘보물섬’이다. ‘보물섬’의 키다리 존 실버는 해적의 삶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그들은 거칠게 살고 교수형도 감수하지만 싸움닭처럼 호기롭게 먹고 마신다. 항해가 끝나면 그들의 호주머니는 수백 파운드의 돈으로 두둑하다. 그 돈의 대부분은 럼주(酒)를 마시고 즐기는 데 쓴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바다로 나간다.” 꽉 짜인 일상에 갇힌 도시인이라면 누가 이런 자유를 꿈꾸지 않겠는가.

▶해적하면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보물지도, 금은보화, 목발, 앵무새, 안대 등과 같은 낭만주의적 장치도 모두 스티븐슨의 창작이다. 그러나 해적활동에 관한 학자들의 실증적 연구가 이뤄지면서 그같은 낭만적 해적상(像)은 무너져내렸다. 해적 연구가들은 해적을 ‘바다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강도’라고 정의한다.

예로부터 기성체제에 절망한 사람들, 하층민들, 탐욕스럽거나 신분의 수직상승을 꿈꾸는 사람들이 해적의 길로 들어섰다. 붙잡히면 십중팔구 사형(死刑)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굶어죽거나 거지가 되는 것보다는 해적생활이 나았다.

▶해적사와 문명사는 반비례 관계를 갖고 있다. 해적이 융성했을 때 문명세계는 쇠퇴했고, 문명이 발흥했을 때 해적은 숨죽였다. 해적이 가장 맥못췄던 시대 중 하나가 고대 로마 시대였던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그 무렵 터키 남부해안의 실리시아는 해적의 근거지로 유명했다. 로마 원로원은 기원전 101년 세계 최초로 반(反)해적법을 제정해 해적들의 항구출입을 금지했고, 기원전 67년 폼페이우스 대장군이 실리시아 정벌에 나서 해적소굴들을 완전히 소탕했다.

▶해적전통이 없었던 한국인들의 해적에 대한 인상은 극히 부정적이다. 삼국시대부터 시달려온 왜구(倭寇) 때문이다. 주로 쓰시마섬(對馬島)을 근거지로 한반도 해안에 출몰해 약탈을 일삼아온 왜구는 한국인들의 일본 이미지를 결정하는 주된 요인 중 하나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최근 미사일 선적을 이유로 미국이 나포했다가 풀어준 ‘서산호’ 사건과 관련해 ‘용납못할 해적행위’라고 비난했다.

미국의 행동을 해적질로 규정하는 것은 북한의 자유겠지만, 국제사회로부터 워낙 ‘불량국가’, ‘깡패국가’로 낙인찍힌 북한의 주장이라 설득력이 없다. 아무리 동족이라지만 미국보다야 정치범 수용소를 둔 북한이 반(反)문명쪽에 더 가깝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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