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안보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외부적 요소는 크게 볼 때 두 가지다.

하나는 북한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변수가 지금 지극히 불안정하다. 따라서 한국의 안보 역시 불안한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게다가 우리는 지금 다음 5년을 결정지을 중대한 선거를 치르고 있다.

국민의 결정이 안보의 향배를 가를 것이다.

북한이 핵시설을 재가동키로 해 상황은 94년 이전으로 되돌아갔다. 북한은 말로는 핵발전(發電)을 얘기하지만 세계가 우려하는 것은 핵폭탄이다. 북한은 이제 거리낌 없이 핵폭탄을 만드는 길을 열고 있다.

북한은 또 대량살상무기를 탑재할 미사일을 공공연하게 외국에 수출해왔음이 드러났다. 주초에 미사일을 실은 북한 배가 인도양에서 나포된 사건은 북한이 미사일 수출국임을 더 이상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증거로 남게 됐다.

우리는 그동안 북한이 이런 모험주의로 나가지 않도록 온갖 「당근」적 수단을 강구해 왔다.「햇볕」,「퍼주기」등이 그것이다. 이제 그런 노력은 아무런 효험이 없음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났다.

그런데도 우리 당국은 북한이 김대중 정권의 선의를 외면하고 번번이 대형 사고를 칠 때마다 우리 안보를 걱정하기보다 북한의 처지와 자기들 입장만을 곤혹스러워 하는 「햇볕지상주의」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대북정책에서 발상을 전환할 때가 됐다. 돈도 주고 곡식도 주고 의류도 주고 기름도 주고 할 만큼 했다. 달래기도 하고 억지웃음을 웃어주기도 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안보를 돈주고 사는 것이라고 강변했다.

이런 것이 통하지 않은 만큼 우리도 우리 나름의 도리(道理)를 닦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채찍」적 수단으로 나가자는 것은 아니다. 한반도의 여러 변수들이 안정 기조를 찾을 때까지만이라도 우호적 외면 (benign neglect) 정책을 펴자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내적(內的) 안정을 도모하고 안보적 장치를 강화하는 한편 북한의 향방이 분명히 드러날 때까지 최소한의 비(非) 정치적 거래를 유지하면서 북한을 그냥 저만치 놓아두고 보자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미국과의 관계를 어떤 형태와 구도로든 재정비하는 것이다. 지금 한·미관계는 50년 역사에서 최저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 내의 반미정서와 반미주의는 갈수록 강도를 더해 가고 미국의 반한(反韓) 감정 역시 어느 쪽으로 튈지 예측하기 어렵다. 냉전의 종식은 미국을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만들었다.

그런데다 9·11 이후의 미국은 그 이전의 미국이 아니라는 것도 알아야 한다. 지금 미국의 눈에는 미국의 적(敵)만 보일 뿐 선량한 우방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세계정책이 온당한가 아닌가를 따지는 것은 지금 우리에게 그다지 실익이 없다. 세계에서 우리는 여전히 약자이고 우리의 국가 이익은 「민족」의 의식이나 선악(善惡)의 개념이 지탱해주지 않는다.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현재의 예측대로라면 6년을 더 갈 전망이다. 「9·11 이후의 부시」 역시 그 이전의 부시가 아니다. 그는 세계 여론을 거스리는 한이 있어도 미국에 대한 폭력적 도전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새 대통령과 정부는 대미관계에 관한 한 싫으나 좋으나 그런 부시와 함께 할 수밖에 없다. 미국이 북한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않는다고 불평하거나 마땅치 않게 여긴다고 사태가 달라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한국 안보의 두 가지 변수인 미국과 북한이 서로 우호적이기는커녕 충돌의 코스로 들어서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과 북한의 관계는 DJ정권의 선심에도 불구하고 계속 꼬이고 있고 한국과 미국의 관계 역시 반목(反目) 상태로 가고 있는 데다 미국과 북한의 관계가 충돌 코스로 가고 있다는 것은 우리 입장에서 최악의 시나리오다. 이 3각관계에 어떤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는 한 한국의 안보는 기로에 서게 될 것이다.

여기서 오는 19일 우리 국민이 하게 될 선택은 정말로 막중한 의미를 갖는다. 우리 모두는 깊이 생각해야 한다. 내정(內政)은 국민의 슬기와 지혜로 어느 정도 보완해 나갈 수 있다.

그러나 이 땅의 안보는 때로 우리의 의지와 통제를 벗어난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안보를 위해 북한과 미국 그밖의 한반도적(的) 변수들을 안정되게 요리해 갈 진중하고 사려깊은 지도자를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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