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

지난 9일 미국 해군이 스커드 미사일들을 실은 북한의 상선을 붙잡아 검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미국은 미사일들이 예멘 정부가 수입하는 것으로 테러세력에 넘어갈 가능성이 없다는 점을 확인한 후 이 선박을 풀어주었다. 이렇듯 사건은 신속히 일단락되었지만 그 의미는 심상치 않다.

첫째, 이번 사건은 아미티지 보고서 등이 예고했던 해상차단작전(MIO)을 미국이 실행한 것으로 향후 북한에 대해 어떤 태도를 견지할 것인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강력한 반테러 정책과 단호한 대량살상무기 반확산 정책을 골자로 하는 군사전략을 표방했고, 테러를 지원하거나 대량살상무기를 확산하는 나라에는 선제공격도 불사한다는 ‘예방적 공격’ 독트린도 천명했다. 이번 사건에는 미국이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생산이나 수출에 대해 공언한 대로 강력한 압박조치를 취하겠다는 결의가 담겨 있다.

그 동안 북한은 국제사회의 우려를 외면하고 미사일을 수출해 왔는데, 작년에만 리비아·이집트·이란·파키스탄·예멘 등에 수억달러어치의 미사일과 부품을 수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미사일들은 전쟁 가능성을 높이고 이스라엘을 긴장시키는 등 중동의 정세를 불안하게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이러한 터에 미국은 새로운 초강경 수단을 선보이면서 북한의 미사일 확산을 방치하지 않겠다는 경고를 보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확증을 제시함으로써 대북압박에 대한 국제지지를 얻으려 하고 있다.

둘째, 이번 사건은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북한의 집착을 재확인시켜주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과 북한은 우라늄 농축 문제를 놓고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던 중이었다. 먼저 핵 포기 조치를 취하라고 요구하는 미국에 대해 북한은 불가침조약부터 맺자면서 맞서고 있었다. 이런 중에 북한은 미사일 수출이 추적당하고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그리고 대량살상무기 문제로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려는 참에 미국 군함들이 득실대는 걸프지역으로 미사일을 실어내고 있다.

그 동안 한국사회 일각에서도 ‘우리가 강경하게 나가면 북한이 반발하여 더 노골적으로 핵을 개발할 것’이라는 논리가 무성했지만, 이번 사건은 이런 주장이 설득력이 없음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북한은 한국 정부가 가장 호의적인 대북정책을 펼치는 동안 금강산댐 공사에 박차를 가했고, 북방한계선(NLL)을 분쟁대상으로 만들기 위해 서해교전을 일으켰다.

그러면서 뒷전으로는 플루토늄 생산에 대한 규명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우라늄 농축을 통한 새로운 핵프로그램을 진행시켰다. 이런 행적들을 종합할 때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개발이 한국의 대북정책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한국이 보다 큰 견제력을 가진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중시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셋째, 이번 사건은 내년 2월 출범하는 새 정부에도 중요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대량살상무기 문제가 남아있는 한 진정한 남북화해가 어렵다는 원칙을 표명해야 한다는 점과 핵문제뿐 아니라 모든 대량살상무기를 해결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주고 있다.

북한이 미사일·화학무기·생물무기 등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핵문제 또는 핵문제의 일부인 농축문제에만 매달려 일희일비한다면 일부를 떼어주고 모든 것을 얻어내는 북한식 ‘의제 쪼개기’나 ‘꼬리 자르기’ 전술에 말려드는 격이 되고 만다. 이런 식의 접근은 장기적으로 건전하고 상호 호혜적인 공존관계를 수립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번 사건은 북한에도 중요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북한은 현 상황이 위기이자 기회라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북한이 계속해서 미사일을 확산시키면서 대량살상무기로 주변국들을 인질로 삼고 국제사회를 협박한다면, 책임 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는 길은 영구히 봉쇄될 수 있다.

반면 대량살상무기들을 깨끗이 포기하면서 체제보장과 외부지원을 희망한다면 원하는 것을 모두 얻어낼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그렇게 된다면, 물론 한국정부와 국민도 더욱 적극적으로 대북지원에 나설 것이다.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