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끝내 한반도를 핵위기로 몰아가려고 하는가. 어제 북한은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지난 94년 미·북 제네바 합의의 파기를 선언했다. 지난 8년여간 북한 핵개발을 막아온 마지막 안전장치를 제거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도대체 북한이 어떤 속셈으로 지금 이 시점에서 제네바 합의 파기를 선언했는지는 선뜻 이해가 되지 않지만, 최악의 선택을 한 것은 분명하다. 북한의 핵개발을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국제사회의 의지는 단호하다. 이는 단지 부시 미국 행정부만이 아니라 국제사회 전체의 결의라고 할 수 있다. 극적인 상황 변화가 있지 않는 한, 앞으로 한반도 상황은 북한과 국제사회가 본격 대립하는 핵위기로 치달을 수밖에 없게 됐다.

특히 미국 정부는 “북한이 영변의 핵시설을 재가동하는 경우 모든 수단을 강구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 같은 미국측의 경고와 단호한 의지를 모를 리 없는 북한이 이에 정면 도전했다는 것은 결국 한반도를 무대로 한 대형 ‘핵도박’을 벌이겠다는 속셈을 드러낸 것이다. 이제껏 설(說)과 관측으로만 떠돌던 ‘2003년 핵 위기설’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우리의 대응이다. 이번 북한 발표로 김대중 정부 5년의 ‘햇볕정책’은 극적인 파탄으로 막을 내리게 됐다. 햇볕정책의 골격은 우리가 인내하면서 대북지원을 하면 북한이 개혁·개방의 길로 들어설 것이라는 내용이다. ‘퍼주기’라는 비난을 받으면서 김정일 정권을 지원한 결과가 고작 비밀핵개발과 미사일 수출, 그리고 그나마 마지막 안전판으로 남아 있던 제네바 핵합의의 파기란 말인가?

그리고 ‘DJ식 햇볕’ 주창자들은 북한을 자극하면 안보가 불안해진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이번 북한 발표도 미국이 먼저 중유제공을 중단했기 때문이라는 이상한 주장을 하고 있지만, 이는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주장이다. 중유 제공이 중단된 것은 북한이 제네바 합의에도 불구하고 비밀리에 농축우라늄을 통한 핵개발을 시도한 데 따른 압박이었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북한이 검증 가능한 방법으로 비밀 핵개발 포기에 동의한다면 제네바 합의는 유지될 수 있다. 이런 명백한 사실관계를 제쳐 놓은 채 무턱대고 북한을 감싸기만 하는 것은 맹목적인 단견에 불과하고 오히려 위기를 부추길 뿐이다.

결국 우리의 대응은 국제사회와 공조해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하는 것밖에 없다. 그러나 문제는 북한이 핵활동 재개를 선언한 시점이 우리에게는 미묘하기 짝이 없는 순간이라는 점이다. 대통령선거가 불과 엿새밖에 남지 않은, 전형적인 권력 이양기에 북한이 핵도박을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이제부터 대통령 후보들이 해야 할 가장 큰 과제는 북한 핵위기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하는 청사진을 제시하는 일이다.

이회창 후보와 노무현 후보의 ‘북한 핵 해법’은 분명한 차이를 갖고 있다. 이 후보는 핵·미사일 등 안보현안의 우선 해결을 강조하면서, 이를 해결하려면 경제제재 같은 압박적 수단을 사용하는 것도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노무현 후보는 절대로 제재는 안되며 대북지원도 계속해야 하고, 북한을 끈질기게 설득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북한 핵위기는 반세기 동안 어렵게 가꿔온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전체를 뒤흔들 수도 있는 사안이다. 따라서 두 후보는 다른 일정과 주제는 잠시 접어두더라도 이 문제에 대한 진지한 해법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필요하다면 두 후보간 긴급 토론도 검토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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