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벨재단 회장인 스티븐 린튼(한국명 인세반) 박사는 1995년부터 대북 식량 지원 사업을 펼치다가 1997년부터 북한의 결핵퇴치 운동을 벌이고 있다. 지금까지 40여 회 방북한 그는 6·15 정상회담 이후에도 세 차례 북한을 다녀 왔다.

일최근에는 북한의 어디를 다녀 왔는가?

“지난 8월, 9월 말~10월 초, 10월 말~11월 초에 다녀왔다. 평양을 비롯해 평성의 평남 제3예방원과 평성시 제3요양소, 정주의 하담결핵연구병원, 염주의 제3요양소, 신의주의 평북 제3예방원, 강원도 원산 제3요양소, 사리원의 황북 제3예방원 등을 방문해 결핵 치료 장비와 약을 전달하고 왔다. ”

일’제3’은 무슨 뜻인가?

“북한에서 ‘제3’이라는 말은 결핵을 가리키는 암호다. ”

일지금까지 북한에 지원한 결핵 치료 장비와 약은 어느 정도이고 결핵 실태는 어떤가?

“X선 촬영차 11대, 예방접종차 4대, 결핵 수술실 4곳에 필요한 장비 그리고 4만 명의 환자가 6개월 복용할 수 있는 결핵약 등을 지원했다. 북한의 결핵 환자가 얼마 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지난 50~60년대 남한의 인구 5%가 결핵 환자였다는 것을 참고하면 추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일최근 방북 때 북한의 의료진들과 환자들의 반응은 어땠나?

“치료 기구나 약이 없어 한약 등을 쓰던 의료진들은 치료 장비와 약을 지원 받자 ‘어깨가 펴진다’고 하더라. 환자들은 대개 약을 보내줘서 고맙다고 말했는데 아직 완치가 안된 어느 환자는 ‘약 좀 더 보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환자들은 내가 가지고 간 결핵약이 한국에서 만들었고 잘 듣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

일다른 인상적인 일은 무엇이 있었는가?

“이번 방북 때 함께 간 해먼드 신부가 외국인 신부로서는 처음으로 평양 장충성당에서 미사를 올렸다. ”

일남북 정상회담 이후의 변화에 대한 북한 사회의 반응은?

“북한은 미국과 한국이 북한을 고립시켜 붕괴시키려고 한다고 보아 왔다. 때문에 북한에서는 (오히려) ‘과연 미국과 남한이 변했느냐’가 화제다. 현재 북한 주민들 간에 미국과 남한이 기존의 입장을 바꾸는 등 변화한다고 보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으면서 친선을 꾀한다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

일남한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분위기는?

“‘남쪽에 대한 인식을 다시 생각해보자’는 분위기가 생겨난 것은 사실이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 가는 곳마다 ‘6·15 공동선언문을 철저히 관철하자’는 표어가 나 붙어 있고 이 선언문에 대한 강습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10월10일 노동당 창건 55돌 기념 집단체조 때도 똑같은 표어가 나 붙었다. ”

일북한은 기존의 입장을 유지하고 경제 지원만 받으려고 한다는 느낌을 받은 적은 없는가?

“북한 내에서도 식량이 외부에서 들어 오면 미국 등 외국에서 지원한 식량이라는 것이 널리 알려져 있다. 미국이 보낸 밀가루의 포대에는 ‘Made in USA’라고 적혀 있고 이런 포대는 재활용되고 있다. 한국에서 지원한 비료의 포대도 마찬가지다. 최근 혜산에서도 봤다. 북한 주민들은 이제 ‘외부의 지원 덕분에 그나마 버티어 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북한이 외부의 지원을 받는 것은 큰 모험이다. ”

일북한 주민들이 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사례로 무엇이 있는가?

“주체 사상은 바뀌지 않았고 지도자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야 한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그러나 북한 사회도 변한다. 한국인들이 기증한 농기계나 결핵약 등을 가지고 북한에 갈 때 지원물이 든 상자의 겉면에 남한에서 보냈음을 보여주는 글씨가 쓰여져 있고 이 지원물을 받은 북한 사람들은 ‘고맙다. (남쪽에) 돌아가면 안부 전해 달라’고 말한다. 북한 사람들이 남북 정상회담 전까지만 해도 남한 사람들을 욕했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

일최근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의 방북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반응은?

“북한 주민들은 미국을 무조건 나쁘다고 보지 않는다.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다고 알고 있다. 미·북 관계의 변화에 대해서는 ‘위에서 움직임이 있는데 어떤 일이 있는지는 두고 보자’는 분위기이다. ”

일북한 주민들은 이제 남한과의 전쟁 가능성이 사라졌다고 보는 분위기도 있다는 얘기가 있는데?

“그렇지 않다. 다만 지킬 것은 지키고 미국과 남한의 침략을 방지할 힘을 보존하면서 (미국과 남한에) 접근해 보자는 분위기가 생긴 것은 사실이다. ”

/이교관 기자 haedang@chosun.com

●린튼은 누구 ?

스티븐 린튼(사진) 박사는 1895년 미국에서 선교하러 온 유진 벨 목사의 외증손자이다. 린튼 박사는 1995년 외증조부의 한국 선교 100주년을 기려 유진벨 재단을 설립, 북한 결핵 퇴치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의 부모도 순천의 기독결핵재활원을 설립해 운영해 오는 등 그의 가계는 4대째 한국에서 선교·의료 사업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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