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炯燦
/미국 서부워싱턴주립대 교수·고려대 북한학과 객원교수

16대 대통령선거 시기에 고국에 와 여러 가지 사회상을 목격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해외동포 학자로서, 특히 북한을 40년 동안 연구한 학도로서 이번 선거에서 제일 중요한 이슈의 하나가 새 정부가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계속 유지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새 정부가 현 정부의 정책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정책이 국가에 가져다 준 득(得)과 실(失), 그리고 국민의 바람에 비친 허(虛)와 실(實)을 자세히 분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이런 작업은 먼 장래 역사가들의 몫이기도 하다.

햇볕정책이 남한에 가져다준 득과 실을 생각할 때 북한이 변하였는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북한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으나 남한이 변하고 있다는 대답이다.

첫째, 북한은 아직도 주민들이 거주지 및 직업 선택의 자유와 여행의 자유가 없는 사회다. 이러한 인간의 기본 인권이 허용되지 않고 있는 북한을 과연 햇볕정책이 변화시켰다고 할 수 있을까?

둘째, 북한은 주민들을 노동당과 김정일 위원장에게 얼마나 충성하는가 하는 정도에 따라 그들의 성분을 규정하고 있으며 이 성분 제도는 주민들의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충성도가 높다고 평양에 살고 충성도가 낮다고 탄광에서 일하는 북한 주민들의 운명 아닌 운명을 햇볕정책이 변화시키지는 못했다.

셋째, 북한 정권의 오랜 통치 이념인 주체사상은 그 표현면에서는 우리식 사회주의니 조선민족제일주의니 붉은 기 사상이니 강성 대국이니 하고 색깔을 바꿨으나 그 근본적 바탕인 독재성과 강제성은 변하지 않았다. 과연 햇볕정책이 주체사상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넷째, 북한의 군사정책의 일환인 핵 개발은 변하지 않고 남한의 햇볕정책 시기에도 계속돼 왔다. 특히 북한이 현재 군사분계선에 75% 이상의 군 병력을 배치하고 있는 상태에서 무엇이 변하였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근본적으로 북한의 핵정책은 미국과의 1994년 조약 체결 이전으로 돌아가 있다고 보겠다. 결국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매년 50만t의 중유를 무보상으로 공급받는 외교상의 득을 가졌다.

다섯째, 북한이 금강산관광사업, 경의선 철도사업, 신의주경제특구사업, 개성공단사업 등 여러 경제 조치를 했기 때문에 햇볕정책이 성공이라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런 조치들은 햇볕정책이 아니더라도 북한이 외화를 벌기 위해서는 하지 않을 수 없는 사정이다. 북한에 외화를 가져다주는 나라는 남한 외에는 없다는 중요한 사실을 우리는 묵인하려 하고 있다.

남북한을 오고 가면서 필자가 보고 놀랍게 느끼는 것은 남한이 북한보다 근본적으로 주민 의식면에서 더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첫째, 남한은 지금 안보 의식에서 민족 의식으로 옮겨가고 있다. 남한의 젊은 층들이 말하는 민족자주권이 북한의 주체사상이 내건 정치에서의 자주와 대동소이한 구호로 돼가고 있다. 특히 남한의 민족자주권은 미군의 남한 주둔과 결부되면서 반미 사상으로 발전하고 있지 않나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둘째, 남한에서 현재 햇볕정책으로 인해, 북한에 대한 온건 태도와 강경 태도가 평화주의와 냉전주의라는 흑백 논리로 발전하고 있다. 김대중 정부는 전쟁의 위험을 막고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햇볕정책을 펼쳐 나갔다고 주장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북정책에서 상호주의를 역설한다든지 지원을 물자로 하고 경화는 주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은 곧 냉전을 주장하는 뜻으로 잘못 이해받게 된다. 그러나 햇볕정책이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켰는가 하는 질문의 답은 그리 쉽게 찾을 수는 없다.

끝으로 남한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북한에 대해 ‘인지적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 때문에 심리적 갈등을 갖고 있는 것 같다. 특히 20·30대 젊은 층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데 김정일 위원장이 민족을 껴안고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인지, 남한을 공산화하기 위해 전쟁 준비를 하는 사람인지 혼동이 오면서 심리적 갈등이 생기고 있다. 북한에 대해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까?

김일성은 사회제도가 변해도 사람의 의식성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사상 투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남한 사회에서 북한에 대한 의식 변화는 사상 투쟁 없이 햇볕정책의 덕으로 발생하고 있지 않나 하는 관찰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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