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간 철도·도로 연결작업을 포함해 군사분계선(MDL)을 넘는 모든 행위는 유엔사의 사전승인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는 제임스 솔리건 유엔사(司) 부참모장의 발언이 논란을 빚는 것은 무척 유감스러운 일이다. 이 발언을 놓고 마치 미국이 남북교류에 제동을 걸기 위해 공연한 트집을 잡고 있는 것인 양 하는 비난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고 한다. 어쩌다 한·미 동맹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답답할 뿐이다.

그러나 솔리건 부참모장의 발언은 우리의 엄연한 안보현실을 그대로 적시하고 있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남북교류가 왕성하게 이뤄지고 통일이 성큼 다가온 것처럼 보여도,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은 1953년의 정전협정 체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기본 틀엔 변함이 없다. 그리고 그 협정에 따른 정전체제의 관리·감독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 바로 유엔사 체제다.

지난 반세기 동안 남북한이 군사분계선을 왕래할 때마다 그 내용을 유엔사에 통보해 온 것이나, 솔리건 부참모장이 앞으로 군사분계선을 통과할 경의선·동해선 사업도 유엔사 승인을 받으라고 요구하는 것도 모두 이런 이유에서다.

지금의 논란이 발생한 것은 지난 9월 남북 ‘군사보장합의’에 따라 북측이 유엔사 승인절차를 생략할 것을 주장하면서다. 당시 합의의 해석을 놓고 유엔사와 남북한의 해석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이를 둘러싼 혼돈이 더 커지고 있는 만큼, 3자(者) 모두 일정한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유엔사와 주한미군측은 자칫 쓸데없는 논란을 유발할 수도 있는 공개발언보다는, ‘조용한 협의’에 주력했어야 했고, 남북교류에 제동을 거는 듯한 일부 발언도 적절치 못했다. 북한도 이번 일을 정전체제를 흔들 기회로 이용하려는 움직임을 중단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은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당위인 만큼, 그것을 지탱하고 있는 정전체제를 대체할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이를 엄격히 준수해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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