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革宰
/국제부 차장대우 elvis@chosun.com

북한에 납치됐던 일본인 중 5명이 지금 일본에 귀국해 있다. 원래 지난달 말 북한으로 돌아갈 예정이었으나 여전히 머물고 있다. 그들이 요즘 일본의 최대 화제다.

피랍(被拉) 일본인의 귀국을 지켜본 우리의 납북자 가족들은 “일본 정부는 자국민에 대한 기본적인 의무를 다하는데…”라며 우리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그런 모습은 “한국이 부러워한다”는 식으로 일본 언론에 보도됐다. 일본 정부에 대해선 “종군위안부라는 역사의 죄악을 망각한 채…”라는 비판도 나오지만, 그에 앞서 우선 일본 정부와 국민이 피랍자를 위해 무엇을 해왔고, 귀국자를 어떻게 맞아들였는지 한번 알아보자.

자국민이 북한에 피랍됐다는 언론 보도가 나온 1980년대 후반부터 일본 정부는 북한과 접촉할 때마다 줄곧 이 문제를 제기해 왔다. “납치 문제 해결 없이, 일·북 수교 없다”고 기회있을 때마다 강조했고, 지난달 귀국이 달성됐다.

귀국 뒤인 10월 31일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일·북 수교 회담의 최대 현안은 납치 문제였다. 그러나 성과 없이 끝났다. 그날짜로 나온 일본 정부 협상대표 스즈키 가쓰야(鈴木勝也)의 발언은 “피랍자 문제에서 구체적 진전이 없는 한 다음번 회담에 응하지 않을 방침”이었다.

이달 3일엔 일본 정부 부대변인에 해당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관방 부(副)장관이 일본에 돌아와 있던 피랍자들을 찾아갔다. 아베는 회담 내용을 상세히 설명한 뒤 “선생님들의 영구 귀국 문제는 장기화될 것 같습니다. 일본에서의 생활에 문제가 없도록 만전을 기하겠습니다”라는 정부 방침을 알려줬다.

“정부가 책임지고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들이 돌아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도 말했다. “혹시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이 죽었다고 북한이 주장할 수도 있으나, 그 경우 유해라도 반드시 일본으로 모셔오겠습니다”라고 강조했다. 앞서 1일엔 총무성, 후생노동성, 국토교통성, 문부과학성에서 공무원 15명을 차출해 ‘피랍 피해자 가족 지원실’을 설치했다.

이번에 돌아온 지무라(地村保志·47)씨는 당초 일본 귀국에 소극적이었다. 오히려 그를 평양에서 만났던 외무성 관리 나카야마(中山恭子)가 “부모님이 일본에 기다리고 계신데 당연히 돌아가 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적극적이었다. 나카야마가 피랍자 문제를 담당하면서 생긴 입버릇은 “이 문제는 반드시 정부가 나서서 철저히 해결해야 한다”이다.

이어 18일 피랍자들에게 매달 24만엔(약 240만원) 이상 지원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특별법을 마련키로 결정했다. 지원금은 일자리를 찾더라도 5년간 계속 지급된다. 특별법은 이외에 자녀에 대한 보조금 심신의 안전 보장 주택제공 생활상담 교육기회 제공 등 삶의 모든 면을 보장하고 있다.

일본 국민들은 어떻게 행동했나. 납치가 발생한 지역마다 시민단체가 구성돼 20여년 가까이 귀국 운동을 펼쳤다. 실제 피랍자가 돌아오자 니가타(新潟)의 한 마을은, 전체 가구수인 107가구가 모두 환영식에 참가했다. 모든 가구가 피랍자 귀국정착금 모금운동에 참여했다. 북한에서 딸을 낳고 사망한 요코다(橫田)의 부모가 가와사키(川崎)거리에서 ‘피랍자 구출활동’ 관련 서명운동에 들어가자 이틀 만에 1만2622명이 서명했다. 사람들은 서명에 앞서 노부부의 손을 반드시 잡았다고 한다. 또 다른 피랍자의 고향인 니가타 시청은 기분 전환과 일본사회 적응이란 명목하에 이 피랍자를 “시 공무원으로 채용하겠다”고 제안했다.

돌아온 한 일본인은 “납치가 일본에서 이렇게 큰 문제가 돼 있는 줄 몰랐다. 일본 정부와 국민 여러분이 저를 아들로 여겨주고 최선을 다해주시는 것 같았다”고 말한 뒤 통곡했다고 한다.
일본 정부는 귀국한 피랍자들이 다시 북한으로 갈 경우에 대비해 일본 여권을 발급해 주었다. 북한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북한으로 ‘해외여행’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피랍자들은 국민과 정부의 자세에서 자신을 얻었음인지, 여권용 사진촬영 때 북한에서 20년간 달았던 김일성 배지를 뗐다.

지난 2일 끝난 남북 적십자회담에서 북한은 “납북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들 그 말을 믿는지, 우리 사회에선 여전히 납북자 얘기가 잘 들리지 않는다. 납북자 가족 외에는 많은 사람들이 조용히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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