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부실기업 처리방침이 강경으로 급선회하고 있다.

금융시장에서 동방금고 불법대출 사건의 파장과 2차 기업구조조정에 대한 실패 우려감이 크게 확산되자, 정부가 ‘예외없는 부실기업 퇴출’이라는 정면돌파용 카드를 내놓은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정부의 부실기업 처리 방침 변경은 31일 주식시장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 개장초 폭락하던 주가가 오후 들어 강보합세로 돌아섰다.

김대중 대통령은 31일 청와대에서 열린 4대 개혁부문 점검회의에서 “회생시킬 기업은 회생시켜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기업은 퇴출시켜야 한다”는 원칙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이기호 청와대 경제수석도 “현대건설·동아건설 등 부실한 대기업에 대한 처리는 대외 신인도를 높이는 관건”이라며 “채권은행들이 원칙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청와대의 이 같은 발언은 그동안 현대건설과 동아건설 처리 문제에서 ‘현상유지’라는 미봉책을 써왔던 정부 정책의 전환을 뜻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당초 ‘회생’쪽으로 기울던 동아건설이 지난 30일 밤 열린 채권단회의에서 ‘자금지원 중단’ 판정을 받은 것은 이 같은 기류 변화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현대건설의 부도 방지에 앞장서온 외환은행이 30일 밤 “돈이 없다”며 버티던 현대건설을 전격적으로 1차 부도처리한 점을 시장에선 청신호(청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

현대건설은 31일 우여곡절 끝에 1차 부도어음을 막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현대건설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금감원과 채권단은 현대건설이 추가 담보를 내놓지 않을 경우 현대건설을 원칙대로 처리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이와 관련, 금융감독원 고위관계자는 “채권기관들이 현대건설에 어음을 돌리겠다고 하면 이제는 막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며 “최종 부도사태에 대비한 대책도 이미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대우사태의 후유증을 경험한 정부와 채권단이 실제로 현대건설을 최종부도낼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또 현대건설은 북한과 남북경협이란 ‘특수관계’를 갖고 있다. 이 때문에 현대건설의 1차 부도는 특히 정몽헌 회장에게 자구계획 이행을 강력하게 독촉하는 ‘경고’가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정부는 그러나 다른 중견·중소 부실기업 처리의 무게중심은 ‘구출’에서 ‘퇴출’쪽으로 확실히 옮겼다. 채권은행협의회는 현재 퇴출기업 리스트를 작성 중이며 오는 3일 발표할 예정이다. 협의회는 유동성(류동성·자금흐름) 문제가 심각한 부실기업들을 ‘자구계획을 전제로 하는 자금지원 그룹’ 또는 ‘법정관리·청산 그룹’으로 분류하는 막바지 작업을 진행 중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법정관리·청산 그룹’에 포함될 부실기업이 당초 예상보다 크게 늘어 40~60개에 이를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44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기업 중 상당수와 건설업·제지업 등 자금난이 심각한 업종의 중견·중소 부실기업들이 퇴출 리스트에 포함될 것으로 관측된다. /윤영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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