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공산당이 당헌에서 ‘공산당 선언’이란 문구를 삭제했다고 한다. 만약 지구상 유일한 공산주의 대국을 붉은 용에 비유한다면 ‘공산당 선언’은 그 용이 물고 있는 여의주가 아니었던가.

이제 그것을 장쩌민(江澤民) 주석의 ‘3개 대표이론’으로 대체했다는 것이다. 미국의 ‘포린 팔러시’라는 잡지가 21세기 들어 ‘역사의 쓰레기통’에 내던져진 사상 6가지 중 첫째로 마르크시즘을 꼽은 게 엊그제였다.

▶헤겔은 ‘법철학’ 서문에 이렇게 썼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어두워질 무렵에만 날개를 펼친다.” 마르크스는 1848년 1월 브뤼셀에서 ‘공산당 선언’을 쓸 때 지혜로운 부엉이가 다시 날갯짓을 준비하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고 상상했었다.

그는 “도를레앙가(街) 42번지에 있는 서재의 자욱한 시가 연기 속에서 밤새도록 미친 듯이 휘갈겨” 썼다. 그는 자본주의의 소멸을 예언하고 “조사(弔辭)를 읽는 예행 연습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오히려 부르주아에 너그러울 정도였다.

▶자구(字句)만으로 따져 보면 ‘공산당 선언’처럼 오해하기 쉬운 제목도 없다. 그것이 인간 역사상 가장 널리 읽힌 정치 팸플릿임에는 틀림없지만, 당시에 공산당이란 당은 존재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또 이 팸플릿은 선언문으로 구상되지도 않았다.

원래 ‘공산주의자 동맹’ 회원들이 원했던 것은 ‘신앙 고백’이었으며, 한 해 앞서 엥겔스가 썼던 초안은 그들의 지하분파들이 사용했던 문답형 입문(入門)의식과 많이 닮아 있다. 문1:당신은 공산주의자입니까? 답:네. 문2:목적은 무엇입니까?…

▶이제 ‘공산당 선언’과 마르크시즘의 유효기간 만료 및 용도 폐기의 공개 선언을 목격하면서 역사의 큰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를 듣는 것은 한국인만의 소회는 아닐 것이다.

냉전시대 서구에서 마르크스는 ‘모든 악을 낳은 악마’였고, ‘1950년대 소련에서는 신(神)의 지위에 올라 레닌을 세례 요한으로, 스탈린을 구원자 메시아’로 삼았었다.
최근 번역된 프랜시스 윈의 ‘마르크스 평전’은 이 같은 얘기와 더불어 마르크스를 악마도 신도 아닌, ‘피와 살을 가진 한 인간’으로 바라볼 것을 권하고 있다.

▶사나운 선동가였지만 많은 세월을 영국박물관의 정적에 싸여 살았던 사람, 사교를 좋아했지만 모든 친구들과 불화를 일으켰던 사람, 가족에게 헌신적이었지만 하녀를 임신시킨 사람, 흥에 겨워 술집 순례를 하다가 런던 거리에서 경찰한테 쫓기기도 했던 사람, ‘공산당 선언’이 나왔을 무렵 체스에 흠뻑 빠져 있었고, 지고 나면 분통을 터뜨리며 야단치던 사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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