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방향으로 체제통일을 추구해야 한다는 언급 자체를 반대할 이유는 전혀 없지만, 불과 며칠 전까지 같은 정부에 속한 외교부 대변인의 반박 성명까지 들을 만큼 ‘햇볕 전도사’를 자임했던 정 장관이 갑자기 북한의 ‘체제 변화 필요성’을 언급하니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다.
이같은 언급이 정부 내 의견 조율을 거친 것인지, 아니면 정 장관이 그간 감춰온 소신을 불쑥 털어놓은 건지 궁금할 뿐이다.
만약 정 장관 개인 생각이라면 현 정부 고위 인사들의 임기 말 기강이 어느 수준에 이르렀는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것이 정부 공식 입장이라면 하루 아침에 느닷없이 ‘체제 변화’를 언급하는 배경이 대체 무엇인가?
이처럼 한국 정부가 오락가락하고 있는 와중에도 미국의 대북 핵 포기 압박 외교는 정해진 단계를 차례차례 밟아가고 있다. 지난 주말 부시 미국 대통령의 특별성명에 이어 파월 국무장관까지 엊그제 “미국은 북한을 위협하거나 침공할 의도가 없다”고 공개 천명했다.
북한이 비밀 핵 개발의 이유로 ‘미국의 대북(對北) 적대정책’을 들면서 그 포기를 요구해온 것에 대해 미국 정부 최고위급 인사들이 육성으로 직접 대답한 셈이다.
물론 북한의 주장은 처음부터 앞뒤가 맞질 않고, 미국 정부도 이같은 점을 여러 차례 지적한 바 있다. 중요한 것은 북한이 계속 핵 포기 요구를 거부할 ‘명분’들을 하나씩 없애고 있는 미국 정부의 움직임이다. 이젠 북한이 핵 포기를 하지 않을 이유나 명분도 없어졌고, 또 마냥 늦출 시간도 남아 있지 않다.
당장 다음 달부터 중유 공급도 끊기고, ‘DJ정부 햇볕 전도사’마저 북의 ‘체제 변화 필요성’을 언급하는 마당에 무엇을 더 미룬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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