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정세의 급변을 바라보는 중국의 태도는, 겉으로는 태연하지만 내심으로는 우려를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중국은 한반도에서 남북한 당사자의 화해와 교류를 일관되게 지지해왔고, 그 연장선상에서 북·미(북·미), 북·일(북·일)간 관계 개선에 대해서도 환영의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동북아 지역 질서 재편에 대해 확실한 전망과 자신감을 갖지 못한 채 자국의 영향력 감소와 발언권 약화를 우려하는 모습이다.

중국 외교부 주방자오(주방조) 대변인은 지난 26일 정례 뉴스브리핑에서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의 방북을 환영하고 지지한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그는 먼저 “중국 정부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 보호하는데 있는 힘을 다해왔으며, 이 같은 목적에 유리한 일에 대해 중국은 일관되게 환영과 지지의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주 대변인의 이 같은 발언은 중국이 일단 북·미, 북·일 관계 개선이 한반도 긴장완화에 보탬이 되고, 그것이 자국의 경제발전에도 유리한 국제환경을 조성한다고 판단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대외적 입장과 달리,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의 방북을 전후해 중국의 ‘불안한 심리’가 여기 저기에서 드러난 것도 사실이다.

대표적인 현상이 ‘항미원조(항미원조)’ 열풍으로, 중국은 이 행사를 통해 중국과 북한이 ‘특수관계’임을 대내외에 과시했고, 북한에도 은근히 압력을 가했다. 지난 2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 기념식에서 장쩌민(강택민) 국가주석은 “중·조 양국 인민과 군대들은 생사고락을 같이했고, 피로써 위대한 전투적 친선을 다졌다”고 강조했다. 중국은 동시에 츠하오톈(지호전) 국방부장 등 군사대표단을 북한에 보내 김정일(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회담하게 했다. 이러한 중국의 행동들은 마치 냉전시대 중·북간의 ‘혈맹관계’를 복원하려는 듯한 태도로 비쳤고, 심지어 50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북한을 도와줄 수 있는 나라는 중국임을 과시하는 듯했다.

하지만 북한이 미·일 및 유럽국가들과의 관계 개선 이후 거액의 경제 지원을 받게 되면, 중국의 원조는 상대적으로 빛을 잃게 마련이다. 중국에 의존해왔던 무역·투자도 앞으로 대미, 대일 의존(대한국 포함)형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

정치·군사적으로도 북한이 미국과의 ‘단독 거래’를 성사시켜, 클린턴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할 경우 중국의 영향력은 그만큼 감소된다. 중국은 또한 김정일 위원장이 김대중(김대중)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통일 이후 한반도 주한미군 계속 주둔’에 동의한 것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런 점에서 중국은 지금 내부적으로 외교전략의 딜레마에 빠져있을 가능성이 높다. 서부대개발 등 국내 경제발전의 시각에서 보면 한반도를 비롯한 주변정세의 안정이 필요하고 그에 따라 북한의 대서방 관계개선을 환영 지지해야 하지만, 군사·외교적으로는 새로운 국제질서를 수용할 논리와 환경이 아직 미비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내년 초쯤 북한을 방문할 것으로 보이는 장쩌민 주석이 새로운 국제질서 하에서 어떻게 양국 관계를 설정하게 될지가 주목거리다. /북경=지해범특파원 hbj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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