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주민들의 하루는 새벽 5시 스피커에서 울리는 시보음으로 시작된다.

“삐 삐 삐~” 하는 소리와 함께 북한 국가가 울려 퍼진다.

“아침은 빛나라/ 이 강산/ 은 금에 자원도 가득한…. ”

이어 인민보건체조를 위한 음악과 구령이 나온다.

“팔 운동, 하나 둘 셋 넷…. ”

북한 전역의 가정집, 공공기관, 지하철 등 구석구석에서 새벽을 여는 이 스피커는 ‘제3방송’이라고 불린다. 자명종이 없는 주민들에게는 아침 기상을 알리는 좋은 수단이기도 하다.

제3방송은 공공기관과 기업소, 집집마다 의무적으로 설치돼 있는 유선방송이다. 켜고 끄는 기능만 있고 채널은 하나뿐이다. 해마다 체신소(우체국)에서 유선방송이 제대로 설치되어 있는지 정기 점검을 한다.

북한의 중앙방송이나 평양방송 등 공중파 방송은 외부세계에서도 청취가 가능하지만 제3방송은 북한 내부용이다. 여기서는 하루종일 뉴스와 음악, 교양강좌, 사상교육, 드라마 등이 흘러 나온다. 노동신문의 사설 등을 방송하기도 한다. 제3방송 역시 공중파 방송과 마찬가지로 노동당 선전선동부 소속이다. 프로그램은 중앙방송의 주요 프로그램에다 각 지역의 특수한 내용들을 가미한다.

대개 아침 시간에는 ‘고매한 덕성’ 등의 제목으로 김일성과 그의 처 김정숙 등의 혁명 활동 역사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업적을 선전하는 내용이 많다. 낮에는 뉴스와 보천보 전자악단 등이 연주하는 음악이 섞여 나온다. 저녁에는 ‘불멸의 역사’와 같은 유명 소설을 성우 한 명이 여러 사람 목소리를 내가며 낭독하는 프로가 인기를 끈다. 남한 사회를 풍자하는 프로도 끼어 든다. 한때 남한의 군대생활을 풍자한 ‘떼떼(말 더듬이)와 문둥이’ 프로가 있었으나 몇년 전 없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저녁 무렵 일반 주민들의 노래 실력을 겨루는 전국노래경연은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 중 하나이다. 인기 텔레비전 연속극을 방송으로 전해주기도 한다. 3방송은 자정이나 새벽 1시쯤 끝난다.

딱딱하고 선동적인 내용 외에도 나름대로 재미있는 풍자극이나 소설, 경쾌한 음악 등을 담아 내면서 북한 주민들과 애환을 함께 한다고 할 수 있다. 제3방송을 듣고 있으면 신문이나 TV 방송을 따로 볼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3방송을 안 켜놓으면 왠지 집안이 썰렁하다는 것이 탈북자들의 이야기이다.

3방송의 위력은 특히 반(반)항공훈련이나 전쟁 훈련시 주민들을 일사 분란하게 움직이게 할 때 나타난다. 각 지역마다 진행되는 훈련에는 3방송의 지시에 따라 주민들이 움직이게 돼 있다. 반항공훈련은 밤중에 불시에 실시하기도 하는데 갑자기 “적기의 출현이다. 모든 가정집은 즉시 반항공준비 태세를 갖추라”고 수차례 방송한 뒤 검열위원들이 집집마다 다니면서 불빛이 새는 집을 단속한다. 다음날 3방송에서는 훈련 결과를 평가하면서 잘못이 발견된 집들을 공개하기도 한다.

3방송의 중요한 기능은 북한 정부가 외부에 발표할 수 없는 사항이나 내부적으로 특별히 강조하려는 당의 방침 등을 주민들에게 알리는 일이다. 80년대말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들이 한국과 수교할 때 공개적으로는 격렬한 비난을 자제했지만 3방송을 통해서는 ‘혁명의 변절자’나 ‘돈 몇푼에 신념을 바꾸는 너절한 자들’이라는 표현까지 쓰면서 격렬히 비난했다. 중국의 개혁개방과 관련해서도 3방송을 통해 신랄한 비판을 가해 주민들에게 개혁개방의 기대를 갖지 못하게 했다. 제3방송이야말로 북한 정권의 진짜 목소리인 셈이다.

북한 인민군은 군전용 3방송을 운영하고 있다. 여단급에 3방송실이 설치되어 있으며 인민군 당 선전대에서 관리하고 있다. 군대 내의 3방송은 최고사령관의 명령등 중대발표를 전군에 신속하게 전달할 수 있다. 굵직굵직한 명령은 대부분 3방송을 통해 전체 군인들에게 전달된다. 군가에 따라 암호체계가 정해져 있기도 하다. 가령 ‘혁명가요’는 1차 진지에 전투준비 태세를 갖추라는 암호이며 ‘적기가’는 비상소집을 의미한다.

/강철환 객원기자 nkch@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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