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권력이 엄격히 사회를 장악하고 있는 북한에 폭력조직이 있다고 믿는 한국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북한에도 폭력 조직이 ‘건재’한다. 이들의 해악이 남한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결코 작지 않다.

일제시대부터 내려오던 전통적인 북한의 유명 폭력 조직들은 6·25 전쟁을 겪으면서 일소됐다. 그후 1959년부터 북으로 건너간 재일교포 가운데는 상당수의 야쿠자(일본 폭력조직) 출신들이 포함돼 있었다. 북한의 주요 도시에는 이때부터 폭력조직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다만 평양만큼은 폭력조직이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폭력조직에 가담하거나 패싸움만 하다 걸려도 집안 전체가 지방으로 추방됐다.

폭력 출신들은 대부분 함경도 일대의 탄광지대로 추방되었다. 이중 일부는 여러 방법을 써서 함흥 등 도시로 들어 왔다. 평양이 조용해진 반면 지방도시에는 폭력조직들이 우후죽순(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식량난이 본격화된 1990년대 들어 폭력 조직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북한의 유명한 폭력 조직이 몰려있는 곳은 함흥이다. 범죄 수법이나 행동이 북한내에서 가장 잔인하기로 소문나 있다. 함흥으로 출장 가는 사람들은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물건 강탈은 물론이고 사람을 죽을 만큼 때리기 일쑤다. 여행객 중 맞아 죽은 사람도 여럿이다.

기차 도착 시간에 맞추어 함흥 역전에는 폭력배들이 줄줄이 늘어선다. 이들은 옷을 잘 입었든가 타지에서 오는 사람들을 주로 공격 대상으로 삼는다. 조직적으로 수십명씩 무리 지어 움직이기 때문에 이들에게 한번 걸리면 빠져 나오기 힘들다. 대낮에도 아낙네들과 약해 보이는 사람들의 짐을 버젓이 훔치거나 빼앗아 간다. 저항하면 사정없이 폭력을 가한다.

폭력배들에게는 각자 영역이 있다. 강한 조직들은 외화상점 앞에서 암달러상들을 거느린다. 장마당(농민시장) 장사꾼들로부터 정기적으로 돈을 뜯기도 한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말이 북한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이들은 국경지대 밀수꾼들과 내통하기도 한다. 길거리서 행인을 터는 부류는 하급 폭력 조직이다.

북한 당국은 살인 강도범 등에 대해서는 공개 처형을 시키는 등 나름대로 강력한 단속을 펴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최근에는 식량난 등으로 인해 젊은이들이 더욱 폭력적으로 변해가고 있는 추세이다. 함흥에 이어 순천, 청진, 남포, 신의주, 안주 등에서 폭력 조직들이 활개치고 있다.

폭력조직원들은 일반 주민들보다는 옷을 깔끔하게 입고 다니며 일제 옷을 선호한다. 당에서 입지 말라고 하는 청바지를 입고 다니며, 자본주의 풍이라며 금지한 장발도 끝까지 고집했다. 가슴에는 값비싼 당 간부용 김일성 배지를 주로 달고 다닌다. 부와 권력의 상징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들은 담배도 말보로나 마일드세븐 같은 외제 담배를 피운다.

조직의 이름은 짐승의 이름이나 보스의 별명을 붙인다. ‘쪽살이 파’ ‘올빼미 파’ ‘바퀴 파’ 등이다.

지방 폭력조직들은 평양 원정에 나서기도 한다. 이들은 지하철이나 버스 정류소, 외화상점 등을 무대로 평양시민은 물론 외국인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댄다.

북한의 치안은 남한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문제다. 근본 원인은 북한 사회와 주민들의 심성이 각박해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김광인기자 kk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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