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의 대북 포용정책은 권위주의 시절의 적대(적대)정책을 감안할 때 민주주의 발전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발전이 민족문제 접근의 전환을 가져와 평화와 공존의 조건을 놓은 것이다. 즉 민주화는 평화·민족문제로의 ‘연쇄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정경분리 역시 민주발전과 체제우위로 인한 국가의 시민사회에 대한 신뢰의 산물이다. 그러나 시민사회에서 가열되는 민족문제를 둘러싼 논란에서 민족문제가 민주개혁을 가로막을 수도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민족·이념문제의 갈등은 민주주의 조건인 사회통합을 저해하기 때문이다.

북한체제의 핵심 특징은 ‘폐쇄’와 ‘독재’로서 이 둘은 상호 강화효과를 갖는다. 폐쇄·독재의 논리는 강한 민족주의 이념에서 발원하며, 체제위기에 따라 강화되는 민족주의는 개방과 개혁을 가로막는 요소로 작용한다. 북한의 민족주의는 또한 체제수호를 위한 군사주의의 기반을 제공한다. 군사주의는 폐쇄와 독재의 지속을 통한 경제참상을 강화해 체제유지와 인민생활을 외부에 의존하는 ‘역(역)의 민족주의’로 귀결되고 있다. 결국 외부의 지원 없는 내적 개혁의 성공 가능성을 줄인다. 따라서 북한의 민주개혁은 내적 경제발전과 외적 평화를 가능케 하는 핵심 전제가 된다.

분단국가에서 민족문제는 내부정치와 분리될 수 없다. 포용정책, 서해사태, 정상회담, 국가보안법을 둘러싼 논란은 남한 정치갈등의 핵심의제가 대북문제와 깊이 연결돼 있음을 표징한다. 김대중 정부는 포용정책의 효과를 내부 지지창출로 연결하려 하지만, 보안법 개정과 같은 민감한 문제에서는 보수·진보 모두의 지지를 얻으려는 속성 때문에 결정을 유예하고 있다.

그러나 포용정책의 지속은 적대로의 회귀에 비해 남한의 민주주의, 경제발전,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기여하는 바가 훨씬 크다. 또한 접촉의 지속은 남한의 민주발전이 북한사회 내부에 대해 ‘분단선’을 넘어가는 ‘침투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는 북한의, 세계와 남한과의 '통합'을 통한 통일에 기여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과 남한의 포용정책은 중대한 한계를 안고 있다. 가장 큰 한계는 포괄적 접근에 군사·정치의 핵심문제가 빠져 있다는 점이다. 경제지원·체제인정(남한·미국)과 군사위협 중단(북한)을 일괄타결하려 해서는 군사·정치대결이 핵심인 현재의 남북관계를 풀기 어렵다.

서해사태, 핵미사일 위기, 그리고 실현 직전에 취소된 미국의 94년 6월 영변 폭격시도는 교류협력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의 위기가 크게 증폭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군사·정치문제가 포함된 포괄접근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즉 군축 논의가 시급하나 페리보고서를 포함해 남한과 미국의 포용정책·포괄접근 어디에도 의미 있는 제안이 없다.

국내외적 문제가 되고 있는 보안법 개정은 인권과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불가피하다. 북한의 조선노동당 규약 전문과 형법의 문제조항들 역시 함께 개정돼야 한다. 그러나 남한정부는 포용정책의 성과에 치중한 나머지 북한의 인권문제에는 침묵하고 있다. 남한의 민주화세력 역시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 인권문제는 민족주의를 넘는 보편적 문제이다. 정부와 민주화세력의 침묵은 이 문제에 대해 과거의 보수세력에게 이니셔티브를 이양, 오히려 공격을 받는 남북 인권문제의 역전된 상황을 만들고 있다. 갈등하는 사고들을 넘어설 ‘포괄적’ 지혜가 필요하다.

/박명림 하버드대 옌칭연구소 협동연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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