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으로 시작하는 서정시 ‘향수’를 지은 납북시인 정지용(정지용)씨의 북에 사는 아들이 아버지를 찾고 있다는 사실이 27일 적십자사가 발표한 북측이산가족 방문단 후보자 명단에서 확인됐다.

정 시인의 큰 아들 구관(구관·73)씨를 비롯한 남쪽 가족들은 이 명단에 북에 사는 동생 구인(구인·68)씨가 포함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동생이 같은 북한 땅에서 아버지 소식조차 모르고 살아왔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며 눈물을 흘렸다. 여동생 구원(구원·66)씨는 “아버지가 납북된 뒤 평양감옥에 끌려갔다가 폭사했다고 귀순한 남파간첩이 말했다는 소문도 들었다”며, “만약 그랬더라도 오빠가 아버지 소식을 모르고 살았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형 구관씨는 “나는 한때 광부생활을 하며 어렵게 살았지만 동생만은 북에서 잘 지냈기를 바랐다”며, “어머니가 구인이 소식을 듣지 못하고 71년 돌아가신 게 가장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구관씨는 아버지가 인민군에 끌려갔다는 소식을 들은 뒤 며칠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자 온 가족이 아버지를 찾아 나섰다가 동생 구인이와 구익이를 잃어버렸다고 했다. 69년엔 둘의 사망신고까지 했다. 그는 “구인이를 만나면 구익이 소식을 아는지 가장 먼저 묻고 싶다”고 말했다.

구관씨는 “동생은 성격이 순해 어려운 일이 있어도 불평하는 법이 없었다”며 “아버지의 예술적 재능을 물려받은 덕인지 피아노를 잘 쳤고 ‘음악가가 되겠다’고 자주 말했다”고 회상했다. “‘문학은 배고픈 공부’라며 문학 근처에는 얼씬도 못하게 하시던 아버지 몰래 숨어서 동생과 함께 아버지 시 구절을 암송하던 시절이 엊그제 같습니다. ”

구관씨는 98년 중국 옌볜에서 개최된 ‘지용제’에 참석했다가 조선족 문인들로부터 “동생 구인이가 북한땅에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기는 했다고 했다. 하지만 만나볼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애만 태우다 지난 1차 이산가족 상봉 때 신청을 했지만 선정되지 못했었다고 했다.

한편 이 소식을 들은 남측 문인들은 6·25 전쟁 이후 나온 ‘정지용씨에 대한 여러 소문’들을 언급하며, 이제 남북이 함께 정지용씨의 행적을 확인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정병선기자 bsch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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