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자유대학을 졸업하고 74년 맨 처음 한국 땅을 밟았을 때, 서양사람이 길거리를 지나가면 동네 아이들은 졸졸 따라다녔다.

한국사람들은 서울대 국문과를 다닌 내가 한국말을 하면 심장마비라도 일으킬 듯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구멍가게 주인아저씨는 두 번 놀랐다. 서양사람을 보고 놀라고, 그 사람이 한국말로 “담배 주세요”해서 놀랐다. 그래서 우리 외국인들끼린 “문만 나서면 무대”라고 말하곤 했다. 외출하는 것이 외국인에겐 큰 맘 먹고 치러야 하는 ‘행사’였다.

20여년이 지난 요즘은 많이 변했다. 외국인이 어딜 가든 신기해하지 않는다. 시골 구멍가게에 들어가도 주인은 대뜸 한국말로 “뭘 드릴까요”하고 묻는다. 사회 분위기도 자유로워졌다. 80년대 독일에서 북한의 ‘조선어 의성어·의태어 사전’을 사왔는데, 세관에서 “반입이 안 된다”며 뺏겼다. 요즘은 수퍼에서 평양소주를 판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여전히 서양사람을 ‘낯선 이방인’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한국에 오랫동안 살아온 외국인 중에는 전문가들이 많다. 처음엔 한국 언론의 인터뷰에 응하지만, 몇 번 나가다보면 “김치는 먹느냐” “한국말 어렵지 않냐” 같은 천편일률적인 질문에 질색을 하게 된다. 서양사람이 재담을 하면 웃지만, 진지하게 “이 나라에 살면서 무엇을 느끼고 생각하느냐”고 묻는 사람은 없다. 조금 깊숙한 이야기를 하려 하면 “당신은 한국인이 아니라 모른다”고 말을 자른다.

나는 정다운 한국 사람들이 좋아 이곳에 정착했고, 한국말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한국 아내를 만났다. 담양 대밭(죽림)에 반해 조그만 집을 지어놓기도 했다. 한국에 수십 년을 살아도 서양인이라는 이유로 관광객이나 코미디언 대접밖에 받지 못한다면 어찌 섭섭하지 않겠는가. 디르크 휜들링 /주한 독일대사관 공보관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